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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아저씨

2017년 1월

by 어풀

하루키 글은 어렵다.

처음 그의 글을 읽었던 때는 '상실의 시대' 혹은 '노르웨이의 숲' 또는 '노르웨이산 가구'가 열병처럼 창궐했던 1995년 봄이었다.

당시 상실의 시대는 대한민국 지성인의 필독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이문열'이란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얼른 읽지 않으면 시대를 상실하고 나머지 공부나 하는 열등생으로 전락할 듯한 불안감에, 형 책상에 놓여 있던 책을 허겁지겁 읽어내려갔다.

와닿지 않는 낯선 정서와 생각, 상황들이 이어져 갔고, 난 꽤 여러 차례 긴 시간을 고심하다가 결국 이해를 포기한 완독을 택했다.

나이가 스무 살도 더 들어 다시 펼쳐도, 상실의 시대는 어렵다.


이듬해 가을 군대에 있을 때, 우연히 읽었던 하루키 단편선은 달랐다.

잡다구리한 일상 에피소드들로 기억하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였다.

매혹적인 외모에 잘 나가는 집안 출신 따님이라 모두가 흠모하던 그녀에게, 자전적 주인공인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우연히 함께했던 학교 스키캠프, 같은 공간에서 잠들었다가 우발적인 신체접촉이 일어난다.

그 짧은 시간의 상상과 번민에 내 일인 듯 설레며 공감하다가, 씁쓰레한 결과에 푸념을 내뱉았다.


"거 사람 참~"


하루키의 소설 중 유일하게 이해하며 읽은 글이었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도 졸업한 후, '해변의 카프카', '1Q84'를 집어들었다가 잠시 고민했다.


'내 이해력이 일반인들보다 떨어지나?'


문체가 주는 이질감에 의식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듯했다.

시원하게 달려가는 문장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내게 그의 이야기는 뭔가 답답했다.

괜찮은 사람 같은데 유독 나와는 거리가 느껴지는 선배를 대하는 느낌.


이 아저씨 이야기를 또 샀다.

등단에 대한 의욕이 스멀대던 작년 봄이었다.

이해를 위한 버퍼링이 다시 거듭됐고, 하루 이틀 찝적대다가 팽개쳐 버렸다.

엊그제 먼 길을 떠나며 소일거리용으로 챙겨왔지만, 다시 절망하고 다짐했다.


"그냥 마지막 페이지까지만 넘기자."


하루키 글은 강철로 만든 무지갠가 보다.

무지 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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