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 양반이!

2015년 1월

by 어풀


"이 양반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한국 사회에서 양반이란 참 아리송한 존재다.

전통적인 양반의 이미지는 상류층이었다.

중국의 유학을 숭상하여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벼슬에 도전해 출세를 꿈꿨던 이들이다.

이들은 드넓은 토지에 소작농을 두고, 하인과 노비를 거느렸다.

육체적 노동 없이 호의호식하고 대접 받는 특권층이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어느 순간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얕잡아 부를 때 쓰이는 말이 되었다.

지체 높던 벼슬아치 '영감'이 노인네를 대신하게 된 것과 비슷한 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양반 집안'이란 말엔 우쭐하지만, '이 양반아'소리엔 도끼눈을 치켜뜬다.

참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양반(兩班)은 한자로 '두 양'자에 '나눌 반'자를 쓴다.

고려시대,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 서쪽에 문반과 무반이 도열해 섰던 모습이 그 유래다.

이 문반과 무반을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바로 학(鶴)반과 호(虎)반이다.

선비를 고고한 학으로, 장군을 용맹한 호랑이로 표현한 거다.

실제로 이들의 흉배(가슴과 등의 디자인 패치)에는 학과 호랑이가 새겨져 있었다.


'호반(虎班)'이 뭔지 몰랐다.

한자어의 뜻을 알지 못한 채 한글로만 때려박은 대표적인 말이었다.

중학교 1학년 한문 시간, 선생님은 중간고사 시험문제로 육군 제2훈련소의 다른 이름인 ‘연무대’가 나온다고 알려주셨다.

연무대(練務臺), 익힐 련, 호반 무, 무대 대.

'무예를 익히는 곳'이란 의미인데, ‘호반’이 어떤 의미인지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선생님, 호반이 무슨 뜻이에요?"


선생님은 처음에 못 들으신 것 같았다.

다시 물었을 땐, 잽싸게 진도를 나가버리셨다.

아마 본인도 그 의미를 모르셨던 것 같다.


25년쯤 지날 무렵, 양반에 대해 찾아봤다.

그제서야 잊고 살았던 '호반'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처음엔 시원했는데, 이내 언어 의미도 모르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던 선생님들이 가엾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더 불쌍했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과 오해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적합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통신환경과 정보채널이 발달해, 원하는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행이다.


더불어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의 뜻을 재미있게 알아보는 문화가 생기면 좋겠다.

단순한 언어의 의미와 유래를 넘어, 논리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의 개선으로 이어질 거라 기대한다.


심심풀이 낙서에 항상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나도 참 별난 양반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번째 사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