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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Sep 19. 2021

텔레비져네마(televisionema)

2013년 9월

난 극장에 가지 않습니다.

삼십대 초반까지는 혼자서라도 가끔 찾았는데, 이후엔 갔던 기억이 거의 없네요.

마지막 관람작이 후배가 억지로 티켓을 쥐어준 '26년'이었고, 그 전 작품은 '혹성탈출'이었습니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영화관 분위기가 탐탁않아 그런  같습니다.

툭하면 여기저기서 시선을 훔쳐가는 핸드폰 조명이 얄밉습니다.

질겅질겅 오징어와 아작아작 팝콘 씹어대는 소리와 냄새에, 작품의 감동이 반감되는 것도 아쉽거든요.


그러다 보니 영화는 주로 TV를 통해 보게 됩니다.

최신 히트작들을 경쟁적으로 방영해주는 명절연휴는 제게 축복의 기간입니다.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를 맞이하는 곰돌이처럼 풍요와 즐거움에 설렙니다.

타이타닉도 반지의 제왕도 명절에 봤습니다.

TV 앞 작은 공간이, 내겐 토토의 시네마천국입니다.

텔레비전 극장, *‘televisionema’입니다.

*사전 찾지 마네요. 방금 지어낸 말입니다.^^;;


그곳에서 가슴에 가장 큰 울림을 준 작품은, '건축학개론'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본 이야기에, 한동안 휑한 가슴과 멍한 머리로 지내야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날 무렵에야 깨달았습니다.

그토록 착잡한 마음이 일었던 이유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이나 그 사람의 진심을 몰랐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서툴고 초라했지만 꿈 꾸던 스무살 풋내기.

그리고 적당히 때 묻은 채, 체념하고 사는 어른이.

이들에 대한 자기연민이 빚어낸 '단기우울증' 같은 거였나 봅니다.^^;;

좋은 직장에서 재밌게 일하며,제법 괜찮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그래도 좋았습니다.

까맣게 잊고 지낸 오래 전 그 날로 소풍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추석엔 또 어떤 작품이 가슴을 흔들지 기대됩니다.


강남선배 ㅆㅂㄹ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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