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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Jun 28. 2019

기억이라는 용기

2019년 6월 23일 베를린

베를린 한복판에 위치한 유대인 추모공원.

언젠가 소설가 김사과는 "필요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응시"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응시에 서툰 사람들이다. 일대일로 마주 앉아 얘기할 때도 상대방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얼굴 윤곽이나 표정, 손짓 등 비언어적 표현을 더 관찰하게 된다. 한국 사회 특유의 권위주의에서 나온 '어디서 눈을 똑바로 떠' 문화 때문 아닐까 싶다.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만이 아니다. 한 달 전쯤 우연히 천안 독립기념관에 들렀다. 오랜 투쟁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기억하는 방식은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는 기념탑과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 양식에선 식민시대라는 혹독한 현실도, 잔인한 나날을 아등바등 헤쳐온 평범함과 간절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주택가에 덩그러니 놓인 '원폭피해 환우회' 현판은 반대로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한다. 단지 '이게 왜 여깄어?' 하는 생경함만 남는다. 멋지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우리는 늘 그런 식으로 왜곡해서 바라본다.

관을 연상시키는 구조물들의 높낮이는 희생자 나이를 의미한다.

반면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추모공원(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은 직시의 공간이다. 그 바라보는 시선에는 두려움과 두려움 없는 것이 공존한다. 높낮이가 다른, 마치 관을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끝없이 펼쳐진 이곳에는 야만과 광기의 시대를 똑바로 쳐다보는 용기, 그리고 다시는 비극을 재연하지 않길 바라는 두려움이 섞인 부끄러움이 담겨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보러가는 길에 우연히 본 이곳에서 나는 독일인들의 그것을 느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향해 가는 길에.

차분하고 엄숙한 직시의 공간 다음에 만난 것은 환희의 광장이다.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곧추세운 창과 말고삐는 제법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까지도 뺏는다. 개선문으로 쓰였다는 브란덴부르크문의 역사를 떠올리면, 옛사람들의 감각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가까이서 보면 그 위용은 더욱 강렬하다. 1791년 완공된 브란덴부르크문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을 본땄다. 나는 생애 처음 두 눈으로 목격한 고전주의 양식의 장엄함에 깜짝 놀란 채 '사람들이 이래서 유럽에 오는구나'라고 탄복했다. 브란덴부르크문 정면에서 그 탄복을 재확인했고.문을 가로질러 나가면 곳곳이 왁자지껄하다. 하지만 광장에 흘러넘치는 관광객 특유의 떠들썩함은, 거리에 그득한 유럽인 특유의 무심함에 에워싸인 덕에 너무 과하지 않았다. 그 미묘한 균형을 바라보며 생애 첫 녹색 맥주를 들이키는 순간은 '좋다'란 말로 충분했다. 비록 맥주가 너무 달긴했지만...(먼산)

아들론 호텔에서 마신 맥주와 와인. 어쩐지 좋아보이더니, 유명한 호텔이었다.

이 도시를 찾은 지 몇 시간 만에 베를린이 좋아졌다.

베를린 중앙역
숙소 근처 안할터 반호프역. 베를린 남쪽으로 가는 길목이던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역사의 앞부분만 보존하고 있다. 지하철역은 별도.
발길 따라 들어간 식당. 슈니첼과 미트볼, 샐러드를 먹었다. 물론 맥주도.
베를린에서 만난 한글. 옛 장벽에 쓴 거다.
생뚱맞은 팔각정이 뭔가 했는데 '통일정'이었다.
옛 베를린 장벽 전시물을 구경하는 사람들
남산 아니라 베를린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 동행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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