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5-26일
스카이라인이 높지 않은 도시들은 삶이 조금은 느려도 좋다고 권하는 곳이다. 그러니 자전거로 이동해도, 걸으면서 다녀도 시간은 인간을 재촉하지 않는다. 난만한 스카이라인은 사람들을 일단 안심시킨다.
내 고향의 풍경인데도 독일의 한 도시에 있는작은 박물관에 전시된 그 풍경은 기묘한 향수와 이국적인 경이감으로 나를 이끌었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 이런 칠기들을 본다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장소의 이동이 가져다주는 느낌의 변화 앞에서 나는 기묘한 환상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외국어를 쓰고 사는 동안 나는 우리말로 대화할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컷 우리말로 수다를 해보았으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게 절실한 건 우리말로 대화를 나눌 어떤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특정한 사람들이었다. 그 특정한 사람들이 들어 있는 기억의 서랍은 하도 자주 열어보아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다.
뮌스터의 중심가에 머물고 있는 시대의 표정이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어느 도시든 한 시대만이 불멸의 기념물처럼 남지는 않는다. 도시에 남아 있는 과거의 표정에는 크루아상처럼 여러 지층이 있다. 중세가 있는가 하면 바로크의 명랑한 표정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세기말의 표정이 어른거리는가 하면 2차대전의 흔적이 도시의 모든 표정들을 관통하기도 한다. 새롭게 올 것들에게 호락호락 자리를 내어주었던 시대는 없었다. 새로운 것들은 오래된 것들의 무릎에서 오랫동안 유아기를 거친다. 유아기를 오래 지속한 시대는 오래 살아남는다. 인간이나 유인원들이 자연 속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을 동물학자들은 그들의 긴 유아기에 둔다. 어쩌면 한 도시는 유아기를 기억하면서 도시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대들이 공존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니 떠난 사랑들이여, 당신들이 남기고 간 물은 인공호수가 되어 언제나 변함없이 내 마음 속에 머물고 있음을 아시라. 어떤 사랑도, 비참하게 배반된 사랑마저도 사랑이었으므로 그 사랑의 마음이 물처럼 흐르던 동안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웠고 삶은 살 만했는가. 물은 흐르고 사랑은 그 밑에 고여 흐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