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건 부족하지 않다고 느끼던 때에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나의 깊은 깨달음인 걸까. 아니면 그저 부럽다고 느끼는 다른 사람 인생의 작은 편린인 걸까. 그렇다면 그 작은 편린조차 허락되지 않는 몸인 걸까. 그럼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 나 자신인 걸까. 타인에게서 일까. 신에게서 일까. 수많은 물음을 깔고 눕는다.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만약 허락을 구해야 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허락을 구할 것이다. 그것이 마음이고, 감정이다. 그 마저도 못한다면 그것은 짐승이 아닐까. 깔고 누운 물음을 뒤적거리며 하나하나 허락을 구할 때에는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내가 느끼는 꽤나 깊고 긴 시간 동안에는 고통스러우면서 해지기도 하고, 넝마짝이 되기도 한다. 마치 운동하면서 근육이 붙는 과정과 같다. 그렇지만 수많은 허락 끝에 나는 완성된다. 타인에게서 느낀 작은 인생의 편린조차 나의 작은 편린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나만의 주문이 있다. 물론 공감과 감정의 결여라는 큰 리스크를 동반하지만.
언젠가 완성될 나만의 작은 왕국은 나에게 있어 크나큰 영향을 주겠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아니 어쩌면 어떤 편린을 쌓아 올릴 거라는 확신이 없으니, 작은 마을이 될 수도 있고, 작은 폐허가 될 수도 있다. 이왕이면 커다란 폐허가 나을 수도 있겠다. 적어도 전에는 번성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만큼 현재를 살라느니 과거를 잊으라느니 그다지 의미는 없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똑같지만, 과거도 나의 역사를 넘어서 나만의 소중한 유적이라고 본다. 자연에 의해 훼손된 유적처럼 어딘가 어긋나고, 빗겨나가고, 찢겨나가도 그것이 어찌하지 못하는 온전한 나를 느끼고 있음에 스스로 감탄과 박수가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