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말 틀린 거 없다.'라고 생각하는 아저씨
쉬는 날의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가며, 여름의 깊이도 점점 익어가며 깊어지는 때, 쓸모없다고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시간은 생각보다 바삐 움직이며, 나에게 벗어나려 하고 있었고, 반면에 시간은 바삐 움직이지만, 몸뚱이는 바삐 움직일 생각조차 안 하고 있으며, 그럴 힘도 없거니와 축 늘어진 채 시체와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밖에 아이들은 떠들썩하게 아침의 모두에게 의도하지 않은 알람역할을 해주고 있다. 잠을 깨우는 아침해의 앞잡이 같은 애들이랄까.
올챙이시절 모른다고 했던가. 내 어릴 때도 그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랬을 텐데. 올챙이였던 주제에 이제야 겨우 팔, 다리가 생기면서, 꼬리라는 젖먹이 시절이 없어지고, 이제야 제 형태가 어찌어찌 완성될까 말까인데, 나이 더 먹었다고 속으로 하는 꼰대질에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맞는 말이 아닌가 하고 자문자답을 하다가 내 질문에 스스로 공감을 했다.
모처럼 쉬는 날 무얼 먹지 하며 수십 번 고민을 한다.
배달을 시켜볼까, 반찬을 만들어볼까. 배달을 시키면 당장의 도파민이 충족되다 못해 넘치겠지만, 30대가 된 지금 20대에 하지 않던 건강을 챙기고 있다. 옛말에 어른들 말 틀린 거 없다고 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건강에 좋은 반찬을 주로 만들어 먹으며 끼니를 때우는 게 도파민이 더욱 충족이 되는 것 같달까. 상대의 꼰대질에 썩은 웃음을 짓던 나는 내 얼굴에 침 뱉기를 한샘인듯하다.
최근에는 연근조림, 쥐포볶음, 버섯볶음, 두부조림, 어묵볶음을 했었는데 , 역시 이상하다. 입맛이 10년 전만 해도 먹긴 해도 맛있게 먹진 않았다. 이상하다기보다는 신기하기도 하다. 뼈해장국의 뼈보다 우거지가 더 맛있는 날이 올 줄은. 아마 어른들은 알았겠지. 입맛 다음에는 어떤 것이 변할까. 긍정적, 부정적, 무감각함, 어떠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고,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가치관?
사실 '생각의 온도'라는 책을 통해 잡생각들은 많이 사라져서 어느 날부터는 무언갈 표현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고, 어렵던 날이 있었는데, 문뜩 핸드폰 어플을 정리하려다 구석에 있던 오래된 브런치를 발견하고, 쭈욱 보다가 다시 작성해 볼까 라는 생각을 했던 날. 다시금 원래 했던 것처럼 컴퓨터 책상의 키보드를 '타다닥' 치는 것보다 모바일 어플로 '토도독' 소리를 내며 작성하는 글쓰기의 익숙함과 소리의 아름다움에 다시금 넋을 잃고 글을 써보자 라는 생각으로 폰을 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글쓰기의 설렘과 긴장보다는 '어떤 주제로, 어떤 것을 어떻게 써야 하지?' 생각보다 재미없게 살았던 건가? 그저 막연한 허탈함?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차고, 난 거기에 가라앉는다. 재미없게 살았지만, 나에겐 한 가지의 단어로 길게 글을 쓸 수 있는,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능력이 있다. 우선 거기부터 시작해 보자.
그리하여 전에 썼던 글보다는 더욱 길게, 누구도 물음표가 가득 차지 않도록. 사실 몇 가지의 고전문학 같은 것을 보고 옛 작가들의 문체를 동경해서 쓰고, 연습하다 보니까, 가끔씩은 꽈배기처럼 꼬아서 어렵게 글을 쓰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의 온도' 출판 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애초에 내다 팔려고 출판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 사람은 기대와 망상이 있으면 뭐든 심장이 뛰면서 어린아이와 같아진다.
의외의 공부가 됐었다. 원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내 글이 출판 후, 더욱 잘 들어왔던 것이 사실상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순간 글과 단절했던 나는 재미없는 일상을 보내며 잊고 살았었다. 이미 달성한 버킷리스트에 흥미가 뚝 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내가 쓰고 있는 글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나아진다.' 옛말에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