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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동주 Jun 06. 2024

답이 없는 아저씨

 살면서 다양한 인격이 있는데, 직장에서의 나,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 부모님과 있을 때의 나, 연인과 함께 있을 때의 나. 보통은 친구들과 있을 때는 활발하게 장난도 치면서 재밌게 노는 편이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과묵하게 조용히 있는 편이다. 쩌면 그런 영향으로 무감각의 계기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나의 진짜 성격이 무엇인지, 나 조차도 모르게 되었지만, 그래도 장점 하나만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순진무구, 성실, 친절 청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부르는 얼굴' , 또는 '호구상'이라고 친구들 사이에 그렇게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장점이 앞면이라면, 단점은 뒷면이다. 양면성이 있는데 만만하게 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종교 관련된 사람들이 꼭 나한테만 말을 걸어온다. 처음에는 조금 들어주다가 싫다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편이었다.

 그렇게 나의 양면성은 뚜렷했다. 뚜렷하기에 나는 뚜렷하지 않도록, 어쩌면 그 누구도 나를 잘 알지 못하도록 숨기려고 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들도 있겠다. 굳이 누구랑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사는 것도 싫증이 나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나라는 존재자체가 꼬여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물음이 다단계의 피라미드처럼 아래로 뻗쳐 나가고, 새롭게 뻗쳐 나가는 것들의 물음에 대한 대답들조차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무수히 많은 새로운 것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중에 어떤 것들이 정확한가. 아니 그 두 개도 정확하긴 한 건가.  정확한 것과, 정답이란 것의 존재여부를 따지자면 어느 쪽의 비율이 더 높을까.  내가 사는 곳과, 내 머릿속은 적어도 교과서도 아니고, 종도 아니며, 나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존재하고 있으니까, 생각하고 있으니까, 사람이다. 사람이니까 생각하고, 존재하고, 친구들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재밌게 놀며 산다.

 타인의 물음은 단편적인 대답과 짧은 서술로 쉽게 가능하지만, 나 자신의 물음은 대답과 답이 없는 어려운  문장이자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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