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된 아이는 아직도 가끔 내게 "엄마 나랑 놀래?" 하며 말을 건다. 아이가 외동이라 어릴 때는 친구처럼 함께 갖은 놀이를 하며 지냈다. 종이접기, 그리기, 택배 상자로 뭔가를 만들고, 아이 장난감으로 역할놀이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놀이터에 가서 잡기놀이를 했다. 계절 따라 놀이도 달라지곤 했다. 봄에는 숲으로 나가서 땅을 파며 놀고, 여름에는 바다에서 하루종일, 가을에는 지역 숲으로 도토리를 캐러 다녔으며, 눈이 오면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제는 그때만큼은 에너지가 많이 없는 내 수준에 맞춰서 같이 하자고 하는 놀이가 많이 줄었다.
저체력의 엄마를 배려해 채로 여러 번 걸러 남은 놀이는 단 두 가지다. 체스와 오목. 체스는 아이가 월등히 잘한다. 업포지션이니 캐슬링이니 하는 나는 모르는 방법들을 써가며 나를 제압한다. 엄마를 상대로 모르는 기술을 쓰는 것은 반칙이 아니냐고 항의도 해보지만 소용없다. 아이가 가르쳐줘도 기억도 잘 못한다. 아이는 체스를 할 때면 늘 자신만만하다. 애써 머리를 굴려 기물을 하나 움직이면 아이는 이미 다음을 그리며 공격해 온다. 결국 대부분 체스 경기의 끝은 체크메이트를 여러 번 당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내'킹'이 안쓰러워 내가 요란하게 "안 해!"를 외치면서 끝난다. 마흔 중반의 엄마를 이긴 아이는 나를 또래 친구로 바라보는 듯 씩 웃고는 "한판 더?"를 외치지만 소용없다. 항상 양보 없는 깔끔한 패배다.
두 번째 놀이인 오목은 체스와는 다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오목을 두고 놀았던 나는 제법 잘한다. 내 기술(?)은 초반에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시켜서 정신없이 만든다. 아이는 그 속도에 따라오느라 바쁘다. 아이가 기술을 써대던 체스처럼 나도 오목을 두며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며 판을 그린다. 처음 오목을 둘 때는 내가 거의 이기곤 했는데 아이가 크면서 반은 이기고 반은 지는 상황이 되고 있다.
지난 주말 저녁. 아이가 자기랑 오목이나 두지 않겠냐고 다가왔다. 아이가 방학을 했으니 한번 해준다며 너스레를 떨고 시작했다. 어쩐지 이날은 집중도 잘되고 연이어 내가 이겼다.
"엄마 평일에는 미역줄기인데 오늘은 다른 걸?"
"미역줄기?" 오목과 미역줄기는 무슨 연결이란 말인가 싶었다.
"늘 뭔가 흐물흐물 겨우 두는 것 같더니 역시 주말이니 에너지가 넘치네." 아이는 연이어 지더니 심통이 난 듯했다. 미역줄기를 벗어난 엄마의 거침없는 한 수가 계속될수록 아이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오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려고 하다가도 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가 여기에 논 이유를 모르겠노라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아이가 이번에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와! 오목 무서운 게임이네." 아이 말인 즉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게임이라고 했다. 엄마의 꿍꿍이를 찾아내느라 신경이 바짝 선 아이의 표정이 귀엽기만 하다. 결국 3:1로 나의 승리로 끝났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내가 아이랑 놀아준다고 표현을 했었는데 이제는 아이가 나랑 놀아준다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까지도 아이가 놀아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함께 잠깐 노는 이 시간들이 내게는 일상이 무탈하다는 안락함을 준다. 이런 작은 일상의 행복들이 모이고 모여 아이와 부모 사이에 단단한 다리를 놓아준다. 미역줄기가 되더라도 아이가 놀자고 하면 재빠르게 함께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