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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01. 2023

버프가 필요해

아이는 어릴 적부터 안아주는 걸 좋아했다. 엄밀히 말하면 안아주는 걸 당연시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불편해하거나 울면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안아주기만 하면 금세 표정이 밝아지곤 했다. 아이를 내가 번쩍 안을 수 있을 때까지 매일같이 안아줬다. 자고 일어나서 엄마를 부르면 침대로 달려가서 소파까지 안고 데리고 나와서 한참을 안아주었다. 그렇게 커와서였을까. 아이는 중학생이 된 지금도 안아달라고 한다. 삼시 세끼처럼 아이에게 하루의 루틴이다.


"엄마 안아줘."

"지금은 너무 피곤한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나는 점점 핑계가 늘어난다. 피곤은 다반사고, 읽던 책이 지금 딱 재미있을 때다, 글을 쓰고 있다, 요리 중이다 등 내용도 다양하다. 그만큼 아이는 밑도 끝도 없이 안아달라고 한다. 오히려 중학생이 된 지금은 더 자주 안아달라고 한다. 하루는 왜 이렇게 다 컸는데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은 무척 간단했다.

"포근해."

"엄마가 말라깽이인데 뭐가 포근해. 포근한 걸로 따지면 듬직한 너를 안는 엄마가 더 포근해야지."

"몰라. 그냥 안아줘. 더 세게" 아이는 두 팔을 두르고 힘껏 안아주는 걸 좋아한다.

"더 꼭! 더 세게!" 아이가 몸이 커지다 보니 이제는 꼭 안아주는 것에도 힘이 들어간다. 두 팔을 가득 벌려야 아이를 안을 수 있고, 아이의 말대로 꼭 힘주어 안으려면 제법 기운도 써야 한다.


어느 날 저녁 어김없이 안아달라는 포즈를 취하며 오던 아이가 '안아줘'가 아닌 생소한 말을 했다.

"버프가 필요해."

"버프? 버프가 뭐야? 너프가 아니고?"

"엄마가 말하는 너프는 장난감 총이고, 버프가 있어. 게임에서 레벨 업 시켜주는 그런 거 말이야." 검색을 해보니 버프(buff)는 게임에서 캐릭터의 스펙을 향상해 주는 마법류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했다.

"이거. 마법약이구나."

"마법약? 어쨌든 버프가 필요하니까 안아줘." 여느 날보다 아이를 더 꽉 안아주었다. 내가 안아주는 게 아이를 레벨업 시켜주는 마법약이 될 수 있다니! 그 뒤로 아이가 안아달라고 하면 마법약이 필요하냐며 되묻고는 힘껏 안아준다.


우리 일상에 간절히 버프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갈비 요리를 할 때 아삭하게 보이던 양배추가 뜨거운 열기에 흐물거리며 숨이 죽는 것처럼 진이 빠지는 그런 날, 마음의 허기가 유독 심한 날, 세상에서 한없이 작게 느껴진 날  버프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오늘처럼 더운 여름날 얼음 동동 커피 한잔이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 어린 말 한마디, 한껏 달리면 나오는 땀방울, 좋은 책 위로 한 구절, 언제나 내편인 부모님의 목소리와 같이 우리에겐 수많은 마법약이 있을 것이다. 신의 버프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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