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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21. 2023

각자의 편이 필요한 우리

요즘 기말고사 준비를 하는 아이는 꽤나 마음에 모서리가 져있다. 학원에서 공부가 잘 되지 않거나, 숙제가 잘 풀리지 않거나, 문제지를 풀었는데 틀리는 것이 많은 날이면 공부를 하다가도 갑자기 책상을 '쿵!'하고 내리치기도 한다. 조금 심한 날에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원망의 말을 한숨처럼 공중에 내뱉기도 한다. 너무나 느닷없이 그런 일들이 벌어져서 조용히 책이라도 읽던 순간에는 심장이 비포장도로를 운행하는 차처럼 갑자기 덜컹 거린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말싸움을 하기 시작하면 극도로 눈치를 살피게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래도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면 알아서 다가와 먼저 사과를 하기도 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안아달라면서 위로를 구하기도 하기에 내가 부모로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처럼  기다려주는 게  전부다.


항상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여유물질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보고 일하다 보니 건조한 눈이 유달리 따끔거리기까지 하고 두통까지 찾아와 퇴근길에 운전하는 것도 힘들었던 날. 아이는 하필이면 그날따라 더 불편한 마음을 거칠게 표현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참지 못해 아이방으로 가서 말을 걸었다.

"됐어. 그냥 저리 가." 평상시 와는 달리 표정에서도 화가 넘쳐흘렀다.

"공부하다가 화날 일이 뭐가 있어. 모르는 게 나오면 그냥 내가 이걸 모르는구나 하고 그걸 천천히 공부하면 되지." 아이는 너무나 교사 같은 내 말에 더 화가 났는지 대답도 안 하고 한번 더 책상을 쿵 때렸다.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데  불현듯 나도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브런치스토리 글에서 이혼을 하고 블라인드를 설치하다가 이혼한 전남편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글의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혼자도 할 수 있을 건데?' 하면서 시큰둥하다 못해 시니컬했다. 나는 말라깽이만 제법 혼자 이런저런 일들을 잘 해냈다. 간단한 전등 교체와 같은 소모품 교체, 전자제품 고치기 같은 것들도 늘 나의 몫이었다. 전 남편이 안 해주기도 했지만 실상 내가 더 잘했다. 그런 삶을 살았던 이유로 나는 이혼 후 단 한 번도 남편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과 아쉬움을 느껴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정말 필요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저 녀석이 누굴 닮아 그런 거냐며, 당신 때문이라고 쏘아붙임을 당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엄마한테 버릇없게 이게 뭐 하는 거야?"라고 단단히 엄포를 놓으며 드라마에서 처럼 무작정 내편을 들어줄 사람 말이다.


글을 쓰다가 남편이라는 단어가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니 혼인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라고 참 무미건조하게도 나와있었다. 우리말 뜻풀이를 보다가 한자를 보니 한자의 의미가 달리 보였다. 남편(男便). 사내 남에 편 편,  남편이라는 의미가 내편 들어주는 남자로 해석이 됐다. 난데없이 남편이 내 편들어 주는 남자로 해석이 된 것은 내 상황 탓이었을까.

부모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쩌면 아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힘듦을 두 편으로 나누어서 애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부모로 홀로 아이를 키우다 보두 배 아니 그 이상의 역할과 애씀이 요구된다. 특히나 아이가 커갈수록 여자인 내가 사춘기 남자아이를 오롯이 돌보는 일은 예상치 못한 미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편 들어주는 남자. 그런 남편이 분명 필요한 요즘이다.


하지만 과연 나만 그럴까? 글을 쓰면서 아이에게도 아빠가 필요한 시기 생각이 들었다. 늘 교사 본능을 못 감추고 교과서 같은 말만 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커버해 줄 수 있는 아빠. 호르몬의 패배자가 되어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고 책상을 손으로 내리쳐도 잠깐 같이 나가자며 비상탈출구를 마련해 주는 자기편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한부모 가으로 살아가는 일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인생의 허전함을 느닷없이 확인하는 시간의 다른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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