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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26. 2021

식물학자의 노트

삶이 진동하는 책들(2)

형태가 있는 것에는 모두 유래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지구 어느 한편에  존재하는 다양한 식물들의 모양, 크기, 색깔, 향기 등 각 식물이 가진 유래를 저자가 직접 그린 식물그림과 함께 하나씩 펼쳐 보여준다. 

  이 책은 그동안 얼마나 얄팍한 지식만으로 식물을 안다고 해왔는지, 인간 중심적으로 식물을 대하며 구분 지어 평가해왔는지 돌아보게 한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식물에서 특히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 그들이 내는 향기도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낸 것일 뿐 이에 대한 선호는 인간이 정한 것일 뿐이라는 것, 당근의 예쁜 주황색이 영양가를 높이고 인간의 눈에 예쁘게 보이도록 만든 것, 식물의 기공이 잎 뒷면에만 있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 토양의 산도에 따라서 꽃잎의 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책 구석구석을 읽다 보면 '어? 정말?' 하며 내가 알고 있는 오개념을 고쳐나가는 재미도 있다. 숨바꼭질하듯 그런 사실들을 찾아간다면 이 책이 주는 재미가 더하리라 믿는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은 수 천년 동안 어떤 종의 식물과 동물은 잘 키우고, 또 어떤 것들은 죽여야 할지를 신중하게 선별해왔다고 한다. 식물 스스로가 지구가 저절로 적응한 게 아니고 진실은 그것들이 가진 특성 대부분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식물들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티끌 같지만 그 존재 자체로 인간에게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지혜를 줄 수 있다고 이 책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인간이 인생을 알아가는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식물이 가지는 강한 생존력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 식물에게 배운 만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식물은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시간에 알맞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향을 만들고, 잎을 떨어뜨린다. 그 적확함을 아는 식물의 지혜에 찬탄하며, 인간은 과연 얼마나 알맞은 시기에 나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척박한 상황에서도 각자 나름대로 시련을 이겨내고 삶을 이어가는 식물을 보며 숭고함마저 느끼게 된다. 꽃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 자체로 예뻐서 그냥 좋아하게 되지만, 이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과 환경 등을 알게 되면 그런 모양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와 의미를 알게 되고 씨앗부터 꽃과 열매까지 그 식물의 부단한 애씀과 바지런함을 느끼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인 저자의 식물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이토록 세밀하게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다면,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 진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구처럼 식물은 자세히 오래 보아야 더 예쁜 지구의 아름다운 생명체였다. 저자의 그림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독자가 어느새 연필을 들어 트레이싱지를 대고 그림을 따라 그려보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책으로 세밀화에 대해서 관심 있는 독자가 보아도 좋을 책이다. 자연 본연의 색의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이 묻어 나와 여러 번 찬찬히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나가던 길에서 곁눈질로 보던 그런 식물들을 조금은 더 오래도록 보아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책 표지 그림으로 나왔던 산수국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시절 여름엔가 보았던 산수국을 자연스레 떠올리며 태양에 덥혀진 흙내 위로 숲을 물들였던 산수국이 눈 앞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식물의 시간에 대해서 작가가 써 내려간 앎의 크기만큼이나 식물들의 삶에서 작가가 찾아낸 인생의 지혜와 우리 삶에 대한 당부는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남을 것이며,  햇볕이 따뜻해지는 5월 작가가 '따뜻한 고구마 케이크 향기'라고 표현한 고로쇠나무 꽃향을 찾아 나설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식물학자의 노트>로 독자들의 마음속 정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주되어 스스로의 삶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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