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커피를 끊었다고?" 친구들에게 커피를 끊었다고 하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 지인들이 그렇게 놀라는 이유가 있다. 나는 지독히도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사랑이었다. 매일 프랜차이즈 커피를 한두 잔 사 먹던 시절을 지나 집에 캡슐 커피 기계를 들이고 급기야 핸드드립의 세계로 진출했다. 커피 맛이 좋다는 카페가 생기면 어김없이 가고야 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는 맛있는 커피를 사주는 친구였고, 그걸 아는 지인들은 곧잘 여행을 다녀오면 으레 그 나라의 커피를 내게 선물해주고는 했다. 신선한 원두를 내릴 때 부풀어 오르는 커피 구름과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시는 순간이 그토록 좋았다. 갓 내린 한잔의 커피와 좋아하는 작가의 책 한 권이면 슬픈 세상을 피해 잠시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더 이상은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시작은 정말 우연이었다. 어느 봄날, 너무 바쁜 나머지 의식처럼 즐기던 모닝커피를 마시지 못했고 그렇게 하루가 가버렸다. 그런 하루가 이틀이 되었고 내가 무려 이틀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중요한 약속을 어긴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가지고 있는 커피 중 가장 좋은 커피를 골라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 마셨을 것이다. 갑자기 무슨 마음에서인지 순간 이 참에 얼마나 안 마셔도 버틸 수 있는지 보자라는 호기로움이 밀려왔다. "엄마 커피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그렇게 쓴 커피를 어른들은 대체 왜 먹는 거야?" 아이가 걱정할 만큼 집과 사무실에서 커피에 의존해하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커피 중독자로 나 스스로를 낙인 해버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벗어나고픈 그 무엇. 그것이 내게는 커피였다.
그렇게 시작된 자칭 '커피 안 마시고 버티기 운동'은 어찌어찌 10일을 넘겼는데 10개월째 유지되고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커피를 마신 적도 있다. 출장을 간 자리에서 정성스럽게 내려준 커피를 보며 "저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라는 것은 어쩐지 결례처럼 느껴져서 몇 모금 마시고는 했다. "책을 읽을 때는 커피인데 어쩐지 아쉽다. " 커피 짝을 잃어버린 나의 오랜 친구는 오늘도 아쉬운 듯 말한다. "와. 너랑 커피 안 마시니까 돈이 모여."라고 놀리며 한 달에 한잔은 마시라고 꼬드기기도 해 한잔은 쯤은 마시기도 한다.
어쩌다 마신 커피는 예전만큼 내게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맛이 있는 건 아닌데 내가 왜 그토록 마셨지? 하는 갸웃거림이 생긴다. 커피의 맛보다는 향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은 휴식 시간임을 명명해 주는 선언과도 같아서 그 순간을 즐긴 것은 아닐까? 여전히 답은 모르지만 커피와의 이별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평생의 짝꿍처럼 생각했던 커피가 없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나한테 무한한 권한이라도 생긴 듯 자유로움을 느낀다.
인생에 수많은 사람들이 인연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인생에는 수많은 기호품들이 왔다가 사라진다. 어떤 이별은 쉽고 어떤 이별은 어려운 것처럼 습관이나 기호품도 어떤 것들은 쉽게 변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이별이 어려운 것도 있다. 인연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듯 사실 이별도 예상치 못한 찰나의 순간이다. 무언가의 이별에 두려워하고 있는가? 어쩌면 그 이별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비워진 그 자리에는 더 나은 다른 무언가가 채워질 것이다. 내게 커피가 빠진 자리에 차라는 세계가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