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전혀 부모가 이해 못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게는 아이의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그랬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다.
"엄청난 비밀을 너에게 이제는 말해 주겠어." 편안한 저녁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나의 비장한 말투에 아이는 밥을 먹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사실 산타 할아버지는 산타 엄마였어!" 영화 속에서 '서프라이즈!' 하면서 상대방이 놀라는 표정을 즐길 준비가 된 주인공처럼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냥 말해주지 말지." 아이의 처연한 목소리에 누군가 꿀밤을 때리고 간 것 같았다. 아이의 표정은 흡사 애지중지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린 표정이었다. '설마 지금도 산타를 믿는 거야?' 아이는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산타의 존재를 믿어왔던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굳게 지키고 싶었던 산타 할아버지라는 존재. 그 믿고 싶었던 산타 할아버지를 내가 한순간에 없애버렸다는 생각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산타 할아버지가 사라진 우리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더 이상 알록달록 하지 않다.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면서 12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않던 아이는 없고, 아이의 기대에 걸맞은 산타가 되기 위해서 아이가 잠든 늦은 밤, 차에 몰래 숨겨둔 선물을 가지러 추운 새벽길을 걷던 나는 추억이 되었다. 더 이상 그렇게 선물을 몰래 줄 필요가 없다. 그저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하면 될 일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내가 이걸 받고 싶어 하는 걸 알았지?" 하며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선물을 열고 받은 선물을 하루종일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놀던 아이는 이제 사진 속에만 남아있다.
"엄마 나 내일 친구들이랑 만나서 친구 집에서 놀기로 했어." 늘 크리스마스면 나와 하루종일 같이 지내던 아이는 내게 자신의 크리스마스 약속을 '학원 다녀올게' 수준으로 무미 건조하게 통보했다. 아들과 함께 못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는 아이의 등 뒤에 "Merry Christmas!"를 외쳤다. 다행히 사춘기 소년의 굵지만 경쾌한 목소리로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엄마도 Merry Christmas!"
아이에게 산타가 사라진 크리스마스는 내게도 말라버린 귤껍질 같은 하루가 되어 버렸다.
삶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존재하면 확실히 위안을 주는 것들이 있다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이에게 산타는 그런 존재였다. 자기만을 위해서 어떻게든 원하는 선물을 알아내서 기쁨을 주고야 마는 그런 사람. 아마 엄마 이외에도 자신을 그토록 아껴주는 누군가의 사랑을 아이는 원했을지 모른다. 산타할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산타 엄마만이 남았다. 오늘 산타엄마는 아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준비할 생각이다. 산타는 없지만 언제나 존재해 왔고 존재할 크리스마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