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올 거지?'
중학교를 졸업하는 아이가 졸업식 30분 전에 보낸 카톡이다.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가 이렇게 조바심 내는 것을 보니 서둘러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내가 안 가면 아무도 갈 사람이 없기에, 아이가 원하는 건 단 한 명, 엄마인 나이기에 아이의 졸업식은 내게 중요한 날이다. 일정이나 업무를 다 조정해서 진즉에 휴가를 받고 아이에게 알렸음에도 아이는 행여 내가 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서둘러 일찍 도착한 졸업식장에서 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뒤에 와 있어.'
졸업식이 끝나고 우르르 일어선 학생들 틈에서 아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체형과 옷이 난이도를 높였다. 행여나 서로 엇갈릴까 봐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누군가 앞에서 날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아이의 미소에 마주 웃어주다 번뜩 그 웃음이 지극히 낯설면서도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그 미소는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항상 방긋 웃으며 달려 나오던 꼬마 아이의 미소였다. 오랜만에 환한 아이의 미소를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졸업 축하해"라는 말과 꽃다발을 건네니 아이의 얼굴은 더욱 환해졌다. "엄마 뭔가 기분이 이상해." 불편한 이상함이 아닌 기분 좋은 이상함이 생생히 드러나고 있었기에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아이가 가방을 가지러 간 사이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운동장에는 많은 가족들이 졸업을 축하해주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혼자 넓은 운동장에 서있자니 어쩐지 내가 더 작게 느껴져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 위로 어지럽게 피어나는가 싶을 때 아이가 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다시 나왔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 하고 재밌게 놀다 오라고 말하고 헤어지려는 순간, 아이가 나를 불러 세우고는 두 팔을 벌려 다가와서 꼭 안아줬다. 옆에 친구들이 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꼭 안아준 아이 품은 너무나 따뜻했다. 고난했던 지난날이, 아등바등 종종거리며 살았던 순간들이, 삶의 피곤들이 한순간에 눈처럼 사르르 녹아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아이의 중학교 생활은 사실 편하지 않았다. 아빠의 부재,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 외로움, 공부 스트레스 등으로 아이는 구체적으로 슬퍼했고 많이 힘들어했다. 아이의 힘듦은 내가 도와주거나 해결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엄마로서의 무기력함을 느끼며 지내는 시간들은 내게도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고 아이의 힘듦만큼 나 역시 적당히 우울해졌다. '역시 혼자서 아이를 잘 키우기는 힘든 걸까?'라는 생각이 잦아지며 자주 외로웠다. 아이가 바르게 클 이유보다 비뚤어지게 클 이유가 더 많은 게 아닌지 자꾸 되돌아보는 시간들이었다. 삶은 내게 느긋함을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아이도 나도 그 시간들을 잘 지나 보냈다. 아이가 말한 이상한 기분은 중학교 시절을 무탈하게 버텨준 자신에 대한 연민은 아니었을까. 아이의 포옹은 아마 그런 자기와 그런 모습을 지켜본 엄마인 나를 품은 일이었던 것 같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자기 방에 있던 아이가 카톡을 보내왔다. 졸업식이 끝나고 나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처음으로 아이 친구들의 얼굴을 봤다. 모두 밝고 좋아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아이의 시간들을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고 끝내는 친구들과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된 아이를 나 역시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었다. 사진 속에서도 행복한 아이의 미소를 보며 오늘 밤 기분 좋은 잠이 찾아올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아이의 평안한 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순간이 세상 모든 부모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