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 부모를 위한 마음 처방

by 도토리

오랜만에 쉬는 연휴. 공기도 맑고 날도 많이 춥지 않은 날이라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온몸이 환기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게을렀던 몸이 청소하듯 부지런을 떠는 기분 좋은 느낌이 밀려왔다. 가파른 동산을 뛰어오르니 숨이 금세 가빠지고 땀이 맺힌다. 얼마나 달렸을까 길가 옆 바짝 마른 가로수 아래 수선화 꽃이 드문드문 펴있는 것이 보였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모습, 무겁지 않으나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은은한 향기에 더해 수선화 꽃은 내게는 잊지 못할 기억을 주는 꽃이 꽤나 반가웠다. 수선화 꽃은 늘 내 눈앞에 시간을 거슬러 내 아이를 데려다 놓아준다.


아이가 서너 살 일 때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던 때라 일주일에 2~3번은 이 할머니게 돌봄을 부탁했었다. 한 번은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차가 세워지자마자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왼쪽 팔을 뒤로 숨긴 채로. 무언가 뒤에 야무지게 숨겼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수선화 꽃발을 내놓았다. 앞머리를 동그랗게 짧게 자르고 마당에서 노느라 옷에 흙이 묻은 아이가 빙긋 웃으며 내놓은 수선화 꽃다발. 은 손에서 꽃다발이 빠질까 꽉 쥔 손이 지금도 생생히 눈앞에 그려진다.

하루 종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미숙한 엄마를 원망도 하지 않은 채 오기만을 기다리며 수선화 꽃을 조그만 손에 모아 건네며 나의 놀람을 눈웃음으로 회답하던 이. 돌아보면 그때는 육아의 힘듦 따위는 사치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주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었던 그런 시기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관계라는 게 있구나 싶었던 인생의 혹독한 깨달음의 시기였는데 아이가 건넨 꽃이 준 향기는 그 순간 나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항상 뭔가 손해를 보고 있고 뺏긴다고만 생각했던 그때의 어리석은 나를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지켜줬다. 수선화 꽃으로 이어진 아이와의 기억은 에너지 젤이 되어 나를 더 빨리 달리게 해 주었다. 이제 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시간들은 아이가 내게 보여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주변 지인들은 또래라서 대부분 중고등학교 자녀를 두고 있다. 일하는 엄마와 아빠로 그녀와 그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아이가 중학생만 되면 육아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이젠 더 힘들단다. 바빠서 잘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더해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이유 없는 짜증을 부리거나, 학원에 가기 싫어하거나 배우자와 아이의 다툼을 중재하는 과정 등에서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많았다. 아이의 방문은 진즉에 닫혔고 학원을 가지 않고 친구들과 놀러 가겠다는 아이에게 한소리를 했더니 들거나 심지어 자해를 하는 경우마저 있고, 게임이나 스마트폰 사용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파국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도 한다. 부분 교사인 지인들인데도 자기 아이는 역시나 키우기 힘들다며 개를 젓는다. 그럼에도 늘 서로 원래 그런 시기다. 우리 아이도 그런다 그건 이성보다 힘이 훨씬 센 호르몬이 하는 일이니 어른인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한다며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하곤 한다.


사춘기 아이로 마음에 흙탕물이 일어 어지러울 때 나는 늘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본다. 뜻대로 안 되는 아이에 대한 걱정, 불안 그동안 아이를 키우며 받았던 사랑의 기억들로 희석시킨다. 화나던 뜨거운 심장은 조금 가라앉고 용서 안 해준다고 벼르던 좁은 마음은 사라지고 아이를 조금 더 지켜봐 줄 여유 찾는다. 아마 아이가 그동안 나를 미소 짓게 한 순간을 떠올린다면 어느 부모든 책 하나는 쓸 분량이 나올 것이다. 처음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부터 어린이의 천진함으로 굳어버린 마음을 녹여버리던 잊고 있던 그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아이가 지금 나를 힘들게 한 일들을 곱절로 계산하더도 아마 르는 사이 아이로부터 받은 사랑과 이해가 훨씬 많을 것이다.


어디선가 이가 가장 거칠어지는 대상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으로 무례해서가 아니라 기댈 수 있어서 그렇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금 한껏 기대고 있는 아이들이 편히 기댈 수 있도록 품을 내어준다면 아이도 부모에게 받은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돌아올 것이다. 나에게 많은 순간 사랑을 주었던 지금은 까칠한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나의 아이에게 오늘은 더 다정하게 말을 건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