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Oct 31. 2021

엄마보다는 친구

12살 지구인 이야기(28)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나의 교육적 판단에 의해서 다니지 않는 거면 좋으련만 아이는 하교 후 정해진 곳으로 가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그 자체를 상상도 하기 싫어한다. 구속을 싫어하는 성격에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아이에게 강요해서도 안될 일이기에, 잘하지는 않더라고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기에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2학기 초에 아이와의 상담에서 아이가 영어공부를 어려워한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학원은 전혀 다니지 않지만 간단한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수준으로 알고 있던지라 걱정이 돼서 영어학원이라도 다닐까 물었다. 

"영어학원 다녀볼래?"

"학원 싫은데."

"그럼 어렵다고 느끼는데 가만히 있으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학원 말고는 없어?"

"줌으로 하는 화상영어 같은 거 있는데 해볼래?"

"생각 좀 해보고."


그렇게 미지근한 대화를 마치고 몇 시간 뒤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높여 나를 찾는다. 

"엄마, 나 엄마가 말한 거 해볼래!" 의외의 말을 해맑게 아이가 웃으며 말한다.

"갑자기?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너무나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머리가 멍해진다.

"응 친구한테 물어보니 받을 만 하대."

"진짜? 그래서 한다는 거야?"

"응!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고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쉽대."

'아. 이렇게 쉽게 설득될 줄 알았으면 진즉에 아이의 친구 카드를 한번 쓸걸.' 나의 열 마디보다 친한 친구의 한마디가 더 강력했다. 


<아들의 뇌>(나무의 철학, 2019)에서 이 시기의 아들은 부모의 지도와 조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부모의 걱정과 조언은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 부모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이웃이나 아들이 호감을 갖고 있는 지인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아이 발달의 고비마다 다양한 지인 카드를 써서 도움을 요청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한 아이의 화상영어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간단한 레벨테스트를 받고 시작했는데 2번 수업 후에 바로 레벨업이 정해져서 아이는 나름의 자신감을 얻고 순항 중이다. 

엄마의 말은 잔소리가 되어버린 아이를 보며 나는 오늘도 아이의 자람을 조용히 체크해 놓는다.


내 아이는 발달 단계 과업 중 '엄마보다는 친구' 단계에서 도달입니다! (도달 일자: 2021.10.16.)






작가의 이전글 아이의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