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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24. 2021

아이에게 다가온 책

12살 지구인 이야기(26)

아이와 오랜만에 주말 서점 나들이를 갔다. 예전에는 내가 좋은 책들을 골라서 아이에게 구입해주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주고는 했는데 아이가 크면서 서점에서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처음 갔을 때는 자신이 원하는 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곳에 자신에게 알맞은 수준의 책이 있는지도 모르던 아이가 두세 번 다녀오더니 이제는 서점에 앞서 들어가서 어딘가로 향한다.

서점에서 책들을 둘러보는 사이에 아이가 뒤에서 다가온다.

"엄마, 나 이걸로 할래."

어떤 책을 골랐나 보니 '최고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라는 책이다.

"그거면 되겠니?

나는 아이가 고른 책은 무조건 존중해 주려고 한다. 내용이 아이 수준에 맞는지, 왜 이 책을 골랐는지 묻지 않고 그저 받아 들고 구입한다.

아이 나름의 이유가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언젠가는 읽을 것이고 재미없는 책을 골랐다면 다시는 그런 책을 고르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가 책을 꺼내 읽다가 감탄사를 내뱉는다.

"우와! 엄마, 여기에 내가 그림 그리면서 안될 때마다 들었던 생각들에 대한 답이 있어!"

"정말? 잘 됐다. 책을 잘 골랐네."

아이는 연이서 나오는 내용들에 대해  말해주며 책의 내용을 소개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내리 책을 읽던 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가 책 볼 때 그 쓰는 거 있잖아. 옆에 붙이는 거. 그거 나도 좀 줘."

포스트잇 플래그를 가져다 주니 책의 한 귀퉁이에 붙인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왜 이 책을 이렇게 좋아할까?' 궁금한 마음이 일었다.

아이가 읽다가 만 책을 한 장씩 살펴보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만이 해볼 수 있는 생각들을 가지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우연히 넘긴 페이지에는 그림은 타인의 평가나 기술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린다는 내용이 있었다.

'오늘 하루도 힘들었어. 좋아.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자.'며 그저 그리는 일이 좋으니까 그리면 기분이 좋으니까와 같은 동기로도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충분하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의 꿈이 화가라고 말한 순간부터 다른 사람보다는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가 이 책에서 그런 마음을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책을 고르지만 어떤 날은 책이 나를 찾아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그런 순간. 한창 고민하던 일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우연히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고른 책을 읽다가 문장 하나에  마음을 위로받거나 고민하던 일의 답을 찾게 된다.

오늘 아이에게도 그렇게 책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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