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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04. 2021

방과 후 수업을 안 가도 돼?

12살 지구인 이야기(32)

"엄마! 호감 가는 애가 톡 왔어!"

한참 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호들갑스럽게 들어왔다.

"뭐라고 하는데?"

"응. 내일 학교 끝나고 같이 놀자고 했어."

"오! 같이 놀 거야?" 아이보다 내가 한껏 목소리가 올라갔다.

"응! 아.. 안되나?" 갑자기 아이가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이 머뭇거린다. 

"왜? 안돼?"

"그게 아니고 나 내일 미술 방과 후 수업이 있잖아."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한 얼굴이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방과 후 수업이 뭐가 중요해. 이게 더 중요하지. 방과 후 내일은 안 가도 돼!"

"헐... 진짜? 나 방과 후 안 가도 돼?" 아이는 예상치 못했는지 나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눈이 커진다.

"응, 다른 애도 아니고 네가 호감 가는 애인데 그걸 거절하는 게 말이 돼?."

"아싸! 엄마 고마워! " 아이는 내 대답을 듣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친구와 카톡을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면 기분 좋아진다는 말이 있다. 아이의 즐거운 표정을 보니 나 역시 기분이 즐겁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정해진 일을 미루거나 조정할 때 엄마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시기는 딱 초등학교 3학년 때인 것 같다. 그 뒤로는 아이의 의견이 더 중요하고, 아이 스스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친구랑 놀기 위해서 방과 후 수업을 안 간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 걸 아이도 알기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한 번쯤은 아이가 해야 될 것이 있지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일정을 바꾸어도 보고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의 선택을 평가 없이 지지해주는 것, 의논을 원하면 기꺼이 들어주는 것, 부모 입장에서 내 생각을 분명히 전달해주는 것이 전부다.   

 

다음날 아침 등굣길. 아이보다 내가 더 아이가 약속은 했는지 궁금해 무관심한 척 툭 내뱉는다. 

"친구랑은 놀기로 약속했니?"

"응. 그런데 엄마 왜 방과 후를 안 가도 된다고 말했어?"

"네가 호감 가는 아이가 너에게 처음으로 같이 둘만 놀자고 한 건데 지금 못하면 다음에 가 있을까?"

아이는 내 대답을 듣고 한참을 혼자 생각하고는 말했다. 

"방과 후는 다음에도 또 있지만 이 친구랑 노는 일은 오늘 안 놀면 또 언제 놀지 모른다는 말이지?"

"친구랑 오늘 재밌게 놀아. 붕어빵도 사 먹고!"


몇 주는 지켜보니 아이는 그 친구가 학원 수업이 없는 목요일마다 방과 후에 함께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은 내 아이가 유일하게 듣는 방과 후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이다. 혹시나 다음에 또 방과 후 수업에 안 가도 되냐고 하면 어떻게 하나 했지만 아이는 딱 미술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친구와 놀고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와 궤도로 12살 시기를 넘어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저 아이가 교신을 요청해오면 대답을, 앞으로 나아가면 묵묵히 잘 가나 보다 하고 이렇게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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