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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05. 2021

12월의 꽃다발

12살 지구인 이야기(33)

아침부터 계속된 업무로 어깨가 결리고 안구건조증은 더 심해져 기분까지 우울해지는 오후. 기분을 되살리기 위해 겨우 시간을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운동장으로 나가 5분 동안 하늘을 보고 들어왔다.

그런데 자리에 돌아와 보니 책상 한편에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아무 메모도 없는 걸로 봐서는 이건 12살 지구인이다.

바로 카톡을 보냈다.

'꽃 잘 받았어!'

역시나 읽지도 않는 카톡에 피식 웃으며 꽃을 한참 들여다봤다. 내가 좋아하는 자주, 보랏빛 꽃과 카네이션 장미가 어우러져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순간 피로함은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아마도 학교에서 오늘 코로나로 못 간 인성수련 대신 체험을 한다고 하더니 꽃다발 만들기 실습 했나 보다.

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 꽃다발을 만들었을지 그려졌다.

아이는 알고 있다. 엄마가 뜬금없이 꽃을 가끔 사 와서 예쁘지 않냐고 하는 것을. 그런 엄마를 위해서 아이는 누구보다 정성껏 줄기를 다듬고 꽃을 배열하고 야무지게 리본으로 묵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다.

"내 꽃다발 예쁘지?"

"응! 너무 예쁘다. 만들 때 어렵진 않았어?"

"안 어려웠어. 친구들이 내가 만든 게 제일 잘했대."

"꽃다발도 잘 만드는구나. 엄마한테 선물해줘서 고마워!"

아이는 내 말에  언제나 그랬듯이 웃는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자기로 인해 내가 웃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나보다 더 활짝 눈웃음을 지으며 웃는 아이였다.  

아이를 늘 내가 위로해주고 돌봐준다고 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참 많은 부분을 기대며 삶을 위로받으며 살고 있구나 되돌아본다.

꽃을 집 책상 위에 두었다. 꽃이 한 다발 놓였을 뿐인데 내 마음에는 여유가 생기고 꽃은 더 빛나고 향기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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