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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pr 03. 2022

앞으로 더 고마울 예정

"우리 혹시 따돌림 당하는 거 아닐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아직도 코로나 걸리지 않은 사람은 요즘 인간관계에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거 알아? 나 진짜 너 빼고는 친구 없는 거 같아."

"어? 너도? 나도 그런데?"

서로 친구가 없다고 우기는 우리는 서로를 슈퍼 면역자라고 호명하며 저녁 한 끼에 필터링 없는 아무 말들을 쏟아내며 3월 한 달을 무사히 보낸 우리를 자축했다.


친구가 '서로 가깝게 오래 지내온 사람'을 뜻한다면, 이 친구는 나의 가장 친구스러운 친구다.

그런데 하필 이 친구는 내 삶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에 만났다. 웃음 뒤에 감춰진 먹구름을 유일하게 알아차린, 그리고 그 먹구름을 하나씩 걷어내 주려고 애써준 친구다.

여느 친구들하고는 달랐다. 내게 좀처럼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류 소설 같은 내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조용히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나를 언제든지 기대게 해 주었다.

소주 한잔이 필요한 날은 그저 잔을 채워주는 것으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보면 따뜻한 커피로, 마음 갈  곳 없는 날 쏟아내는 내 톡에 따뜻한 위로로 그렇게 오래도 내 옆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에게는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나 글 써볼까?"

"글? 뭐든 해봐. 넌 잘할 거야."

그러면서 길을 걷다가 좌판에 놓인 수제 수첩을 하나 사주었다.

"글 쓰고 싶은 것들 생각나면 여기 적어뒀다가 글 써봐."

사실 몇 해전 이 일로 나는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동안 글을 써서 여러 가지 이벤트가 내 삶에 있었다. 브런치 글을 계속 쓰게 되어서 100번째 글까지 가게 된다면 반드시 내 글의 100번째 글은 너에 대해서 쓰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쓰려고 보니 글 하나로 담아내기에 너무나 부족하다 싶다. 안 되겠다. 다음에 500이나 1000번째 다시 써야겠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와서 저녁을 사주겠다더니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살이 빠진 것 같다며 나를 빵집으로 데리고 갔다.

"밤에 이 빵들 먹고 살쪄라."

어릴 적 말라깽이였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을 친구가 하더니 빵을 하나씩 담아서 계산대에 섰다.

"고마워."

"앞으로 더 고마울 예정인데?"

고맙다는 내 말에도 더 고마울 예정이라며 웃어 주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며 순간 눈물이 올라오는 것을 웃음으로 눌렀다.


불교에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때가 되어 인연이 나타나는 것이란다. 한 시절을 건너게 해 준 이 친구가 내게 그 시절의 인연이어서 참 다행이다. 내 인생의 오르막길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한 쪽 손을 꼭 잡아준 내 친구. 이제는 내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에서 함께 풍경을 보아줄 내 친구. 이런 친구가 있어 내 삶은 참 복됐다.


"야. 언니 아직 꽃 안 폈어! 나중에 잘되면 꼭 한 턱 낸다!"

"그래, 너는 주식으로 치면 조용히 우상향 할 가치주야!"


취기에 외치던 언젠가의 우리의 대화가 이뤄지기를, 받은 것만큼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따뜻한 봄날 조용히 바본다.


'친구야, 네가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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