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아이가 이해돼
13살 지구인 이야기(26)
어느덧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 22년째다. 22년. 열 손가락을 두 번 접고도 2개의 손가락을 접게 되니 학교에서 꽤 오래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수업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어떤 날은 별로 준비를 못한 것 같은데 유달리 오늘은 수업을 좀 잘했다 싶은 날이 있고, 또 어떤 날은 애써 준비한 수업이 제대로 안돼서 속상할 때도 있다. 오늘은 애써 준비한 수업이 잘 안 된 날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몇 주전부터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옆에 친구에게 말을 걸거나 장난을 치는 아이의 얼굴이 퇴근길에도 떠오른다. 속상한 마음에 내 아이에게 푸념하듯이 말을 쏟아내게 된다.
"왜 수업시간마다 수업을 듣지 않고 장난만 치는 걸까?"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게 어려운 걸까? 엄마는 듣기가 제일 쉬운데 그 아이가 이해가 안 돼."
평소와 다른 나의 퇴근길 질문에 아이는 차 뒷자리에서 귀를 쫑긋한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이가 말을 했다.
"엄마, 그런데 난 그 아이가 이해가 돼."
"진짜?" 아이가 왠지 내 편을 들지 않고 수업시간에 내 말을 듣지 않고 장난만 친 아이 편을 드는 것만 같은 약간의 서운함이 순간 밀려왔다.
"엄마, 아이들한테는 수업 시간에 장난치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어."
이 말은 또 무슨 말인가! 수업시간에 장난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니!
아이들은 원래 수업 시간에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낯설게 들렸다.
"장난을 좋아하는데 참는 것일 뿐 그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응. 그런데 엄마가 수업 시간에 엄마가 엄청 재미있게 하거나 그 아이가 관심 갖는 게 나오면 장난 안치고 들을 거야."
아... 아이의 말을 들으니 듣지 않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고 어쩌면 내 수업이 문제가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시간 아이들과 수업을 해왔으니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아마 내가 제시하는 활동이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와의 대화는 내게 아이의 시선으로 다시 가르치는 아이들을 바라볼 시간을 주었다.
아이가 달라지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한번 달라져 볼까? 내 아이와의 대화 이후에 그 반 수업을 들어갈 때는 조금 방법을 달리했다.
장난치는 아이에게 멀리서 집중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자주 아이 옆으로 다가가며 수업을 진행했고, 아이가 책을 펴지 않거나 다른 활동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아이의 책을 펴주고 돌아왔다. 이론 수업이 주를 이루는 날이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준비하거나,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활동들을 준비했다. 여전히 그 아이는 주변 아이들에게 말을 자주 건네고 집중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장난만 치던 아이도 장난치던 아이를 원망하던 나도.
하지만 아직은 장난이라는 녀석에게 지는 기분이다. 어떻게 하면 장난보다 재미있는 수업을 만들까? 오랜만에 고민하는 기분이 나쁘진 않다. 기필코 이겨야겠다. 그 장난이라는 녀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