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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06. 2022

너! 오랜만에 귀엽다

13살 지구인 이야기(28)

"엄마, 나 농구하고 올게."

주말이면 11시까지 잠을 자기도 하는 잠만보 아들이 8시가 되어 일어나더니 동네 놀이터에서 농구를 하고 오겠다고 한다.

"엄마도 오고 싶으면 와."

"엄마가 안 갈 확률은 99.9%!" 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의 등에 대고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 아침 멍 때리며 커피 마시고 책 읽는 게 내게는 소중한 하나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어제 비가 왔는데 코트가 미끄럽지는 않을까?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 동안에도 아이 생각에 눈도 마음도 멈춘다.

'아... 이건 그냥 가야 돼.' 일어나서 아이가 있을 놀이터로 갔다. 멀리서 보니 아이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의자에 앉아 있다.

'오길 잘했네' 괜히 혼자 있는 아이가  외로워 보여서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자. 0.1%의 확률로 엄마가 왔다!"

나를 본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농구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슛도 쏘아보고 레이업슛도 해보고. 그런데 자기 생각보다 슛이 안 들어갔는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혼자 있을 때 잘됐는데 엄마가 오니 안되네."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슛을 계속해보지만 잘 들어가지 않자 아이가 갑자기 이제 안 할 거라며 농구공을 세게 링으로 던졌다.

튕겨 나온 공을 잡아 벤치에 앉아 있는 아이 옆에 앉았다.

"물 마실래?" 아에게 물을 건네고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엄마, 아까 짜증내서 미안해."

"완전 오랜만인데?"

"뭐가?"

"사춘기 끝난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너 짜증 내는 걸 보니 귀엽다!"

아이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날 보며 한번 씩 웃어주고는 다시 코트로 공을 튀기며 나간다.


아이가 짜증이 났을 이유를 생각해보면 하나다. 잘하는 자기의 모습을 엄마인 내게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맘대로 되질 않으니 짜증이 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짜증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복받치는 역정이나 싫증을 내는 짓이라고 나온다. 자신이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나는 것 당연스러운 감정이다. 항상 우리는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표출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람을 어느 순간 아프게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나는 가끔 행복하고 가끔 짜증 나고 가끔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이라고 다를까. 가끔 짜증도 나야 건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짜증 나면 짜증 낼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아이 옆에서 언제고 녀석의 짜증을 바라봐주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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