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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13. 2022

반딧불이

13살 지구인 이야기(29)

반딧불이. 이름부터가 왠지 마음이 가는 예쁜 이름이다. 개똥벌레라고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는 불란지라고도 한단다. 그런 반딧불이를 한 번은 보고 싶어 체험을 신청하고 다녀왔다.

늦은 시간으로 예약해서 가다 보니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이라 운전을 하는데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어둠은 가끔 이렇게 내게는 두려움의 시간다.


장소에 도착해 간단하게 반딧불이 설명을 듣고 숲으로 안내해주시는 분이 손에 든 작은 막대기 끝 작은 불빛에 의지하며 따라나섰다.  속 이렇게 깜깜하게 갈 건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이 환해진다. 가로등이 있나 봤더니 그건 달빛이었다. 달이 원래 이렇게까지 밝은 빛을 내는 것이었나 싶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걸으니 그 옛날 달빛에만 의지해 밤의 시간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해보게 된다. 저 세상 빛이 이 세상으로 오는 느낌.

"엄마는 달빛이 이렇게 밝을 수 있다는 거 생각 안 해봤어."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이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입구에 들어서자 반딧불이 몇 마리가 눈에 띈다. 작은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앙증맞고 반갑다. 이 지역에 있는 반딧불이는 운문산 반딧불이로 암컷은 날개가  없어 날 수가 없으며 수컷만 날아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곶자왈을 유영하는 반딧불이들은 유쾌한 기분을 선사해줬다. 곤충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도 반딧불이가 내게로 다가올 때면 그 반짝반짝한 빛이 예뻐 뒷 음질 치지 않고 반겨주게 되었다.


트인 곳이 아닌 숲길로 들어서면 말 아무런 빛도 없었다. 앞을 보아도 땅을 보아도 보이는 게 없었다. 간혹 보이는 반딧불이 빛이 더욱 반가웠고 밝다. 깜깜한 밤 우연히 만나게 되는 몇 안 되는 반딧불이가 그토록 반가운 것처럼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작고 소박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인공 불빛도 없이 어둠 속을 걷기 시작하자 울퉁불퉁한 길에서 아이가 넘어지진 않을지 걱정이 되어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오른손잡이인 내 오른손과 왼손잡이인 아이의 손이 하나가 된다. 한 시간 동안 짧지만 도톰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니  아이와 어릴 적 걷던 그날들의 모습이 스쳤다. 기분이 좋아 아이의 손을 꽉 잡으니 아이가 답하기라도 하듯 깍지를 벌려 내 손에 포갠다.


한참 그렇게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에 또렷하게 북두칠성이 보였다.

"저기 봐! 북두칠성" 아이에게 알려줬다

"엄마 그럼 저 끝에서 다섯 배 옆으로 가면 북극성이라는데 저거야?"

"응. 저기 제일 밝게 빛나는 별"

깜깜한 그 시간.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그 공간에서 별을 보니 예전 사람들이 길을 이렇게 찾았겠구나 싶었다. 도시에서는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던 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을 걸으며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앞서 걷는 사람의 검은 실루엣과 가끔 달빛이 잎에 반사되어 보이는 게 전부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적어지자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졌다. 정돈되지 않은 돌 길 위를 걷는 발소리에 귀가 먼저 일어나고, 다소 거친 돌이 발바닥을 누르는 감각에 신경이 곤두선다. 꽉 잡은 아이의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의지해서  걸었다. 실루엣만 보이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며 걷고 있으니 무섭다가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하게 되니 어느 순간 마음에 담고 있던 일상의 근심과 걱정들이 사라진다.


돌아가는 길. 아이의 얼굴도 나의 얼굴도 한 주의 피로는 날려버린 얼굴이 된다.

"엄마한테 고맙지? 이런 것도 보여주고"

"아니. 엄마한테 고마울게 아니지"

"자연이 보여준 거야. 자연이!"

아이 말이 맞다. 자연은 늘 우리에게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그 신비로움을 알고 세상에 감탄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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