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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15. 2022

너는 나의 금실

13살 지구인 이야기(30)

이제 13살.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의 학부모 공개수업을 다녀왔다. 같은 학교에 아이는 학생으로 나는 교사로 있다 보니 학교에서는 서로 아는 채 하지 않는 우리만의 룰이 깨져야 되는 순간일지도 몰라 며칠 전부터 아이에게 여러 차례 확인을 했다.

아이는 자기만 특별해지는 것 같아 싫다고 고학년이 된 순간부터는 한사코 아는 채 하는 것을 싫어했다.


"학부모 공개 수업인데 엄마 갔으면 좋겠니 안 갔으면 좋겠니?"

"엄마 마음대로 해." 오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엄마가 가면 같은 학교 선생님이니까 담임 선생님이 괜히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와서 처음에 내 얼굴만 보고 가."

그렇게 아이와 약속을 했다. 선생님도 불편하지 않고, 같은 학교 교사인 엄마를 가진 아이도 불편하지 않고 나도 부모 노릇은 할 수 있는 적당한 타협점.


사춘기 아이의 마음은 하루, 한 시간 계속 변하기에 오늘 아침 등굣길에 한번 더 물어보았다.

"오늘 공개수업 어떻게 할까?"

"와서 보다가 나가도 되고 더 나를 보고 싶으면  봐도 돼."

지난번과 말이 다르다. 자기를 더 보고 싶으면 봐도 된다는 매우 긍정적인 답변이 나왔지만 일단 가서 아이의 눈치를 살펴야 할 것이다.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으면 아이들은 뒤를 힐끗힐끗 돌아본다. 먼저 자기 부모님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한다. 처음부터 가보려고 했지만 급하게 정리하고 올라가느라 지각이다.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가 아이의 뒷모습을 확인한다. '뒤돌아 봐라. 뒤돌아 봐라.' 마음속으로 조용히 아이를 불러보지만 아이는 전혀 뒤돌아 보지 않는다. 수업 중 자리를 일어나서 친구들과 의견을 나눠야 되는 시간이 되어 일어서던 아이는 나중에야 나를 발견했다. 아이가 눈으로 웃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아이만 보고 나오려다가 공부 내용이 자기의 장점을 알아보는 활동이라 욕심을 내어 더 지켜보기로 했다. 친구들이 보는 나의 장점과, 내가 보는 나의 장점을 생각해보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는 수업은 교사인 내가 보기에도 참 재미있고 알찼다.

아이는 내가 같은 공간에 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내내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기분이 퍽 좋아 보였다.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유쾌함, 편안함 내지는 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잘 버무려져 있었다. 아직도 아이처럼 내 표정 하나하나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더 기분 좋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느껴졌다.  그 마음이 느껴져 나는 마을의 정승처럼 굳건히 서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 주었다. 수업이 다 끝나니 다들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만 아이는 눈빛으로 허락을 해주었다.

'엄마 이제 가도 돼.'


수업을 보고 있자니 아이에게 갑자기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형제도 없고 오로지 엄마와 단 둘이 지내면서도 구김 없이 자라준 아이가 고마웠다. 유치원 시절 "엄마 왜 나는 동생이 없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미안하다 했을 때도 엄마가 만약에 동생을 낳았다면 그 누구보다도 착한 동생 낳아주었을 거라고 말해주던 아이. 3년 전부터 둘만 살게 되었을 때도 자기가 엄마라도 그랬을 거라고 나를 이해해주던 아이의 말들이 떠올랐다.

어느덧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인 6학년이 되어서도 아이는 이렇게 작은 시간 안에서도 내게 웃음을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다가 다음 문장을 만났다.


[오로지 그의 딸만이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짙은 암울함에서 그를 다시 데려올 능력이 있었다. 루시 마네트는 그의 고통 전 과거와 고통 후 현재를 이어주는 금실이었다.]


누군가에게 금실이 된다면 아이에게 금실이 되고 싶고, 누군가 나의 금실이어야 한다면 나는 아이를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과거의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현재의 삶을 누리며 탐험하게 해주는 고마운 아이. 삶을 놓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실을 내려주는 아이. 과거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현재를 살고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아이. 더 나은 부모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아이. 내게 금실인 아이처럼 나도 아이가 힘들 때 벗어날 수 있는 단단한 아이의 금실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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