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아이와 이야기하다가 말다툼 아닌 말다툼이 시작됐다. 서로 아슬아슬하게 감정의 줄타기를 하다가 입을 닫았고 각자의 방으로 갔다.
분이 풀리지 않고 몸속으로 들어온 공기는 거칠게 달궈져 몸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다. 이럴 때는 청소를 하는 게 답이다.
쓰레기를 정리해 배출할 것들을 챙겨놓고, 어지러워진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해 청소기를 돌린다. 우리 집에서 유일한 고가의 가전제품인 D사 청소기의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이럴 때만큼은 위로 아닌 위로가 된다. 요란한 모터 소리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고, 내다보지 않아도 내가 분노의 청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화를 표현하는 꽤나 적당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청소를 다하고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왔다.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가 넘어간다. 정말 저녁 내내 청소를 한 셈이다. 청소를 하니 땀이 나온 만큼 기분은 차분해진다.
정리를 마치고 자려고 누우니 아이가 와서 아까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
"엄마, 아까는 내가 짜증내서 미안해."
"그런데 엄마는 왜 화가 났다 하면 청소하는 거야?"
아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으로 별거였던 일이 별거 아닌 일이 되고 만다.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사실 잘 몰랐었다. 이상하게도 들릴 수 있지만 가장 내가 많이 시도했던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에서 답을 찾으려 했달까. 하지만 책도 마음이 여유가 있을 때 읽어야 제대로 읽히는 것이었다. 눈이 활자를 읽는 것은 가능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내 스스로에게 고문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 가족, 친구, 동료로 인한 모든 문제들이 다 내 잘못 같게만 느껴졌다. 말을 바르게 하면 좋았을 것을, 내가 너무 예민했나? 와 같이 자꾸 내가 잘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와서 관계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는 불편함을 혼자 다 감수해내는 내가 되었다. 화가 후회로 바뀌고 다시 죄책감으로 바뀌는 경험은 예민한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는 했다.
언제부터 어쩌다 화가 나면 청소를 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음이 답답하면 집이 불편하게만 보였다. 화가 나면 상대방의 미운 점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공간이 정리되면 내 마음도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청소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단 크게 일을 벌인다. 옷을 다 꺼내 정리하기도 하고 가구의 배치를 바꿔보기도 한다. 그렇게 입주청소 수준으로 청소를 끝내고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가 없다. 내 앞에 놓였던 불편한 일들을 한 순간에 처리해버린 마법을 부린 기분마저 든다.
이렇게 쓰고 보니 화를 깨끗한 우리 집 만들기로 바꾼 내가 괜찮아 보인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다툼 뒤의 청소로 가장 만들고 싶었던 것은 내 화가 나와 내 아이를 해치지 않도록 마음속 천사를 지키는 파수꾼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