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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21. 2022

화가 났다 하면

13살 지구인 이야기(31)

저녁에 아이와 이야기하다가 말다툼 아닌 말다툼이 시작됐다. 서로 아슬아슬하게 감정의 줄타기를 하다가 입을 닫았고 각의 방으로 갔다.

분이 풀리지 않고 몸속으로 들어온 공기는 거칠게 달궈져 몸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다. 이럴 때는 청소를 하는 게 답이다.

쓰레기를 정리해 배출할 것들을 챙겨놓고, 어지러워진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해 청소기를 돌린다. 우리 집에서 유일한 고가의 가전제품인 D사 청소기의 시끄러운 모터 소리가 이럴 때만큼은 위로 아닌 위로가 된다. 요란한 모터 소리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고, 내다보지 않아도 내가 분노의 청소를 하고 있다 것을 보여주기에 화를 표현하는 꽤나 적당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청소를 다하고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리 밖으로 나왔다.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 넘어간다. 정말 저녁 내내 청소를 한 셈이다. 청소를 하니 땀이 나온 만큼 기분은 차분해진다.


정리를 마치고 자려고 누우니 아이가 와서 아까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

"엄마, 아까는 내가 짜증내서 미안해."

"그런데 엄마는 왜 화가 났다 하면 청소하는 거야?"

아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으로 별거였던 일이 별거 아닌 일이 되고 만다.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사실 잘 몰랐었다. 이상하게도 들릴 수 있지만 가장 가 많이 시도했던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에서 답을 찾으려 했달까. 하지만 책도 마음이 여유가 있을 때 읽어야 제대로 읽히는 것이었다. 눈이 활자를 읽는 것은 가능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내 스스로에게 고문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 가족, 친구, 동료로 인한 모든 문제들이 다 내 잘못 같게만 느껴졌다. 말을 바르게 하면 좋았을 것을, 내가 너무 예민했나? 와 같이 자꾸 내가 잘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와서 관계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는 불편함을 혼자 다 감수해내는 내가 되었다. 화가 후회로 바뀌고 다시 죄책감으로 바뀌는 경험은 예민한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는 했다.

 

언제부터 어쩌다 화가 나면 청소를 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다. 하지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음이 답답하면 집이 불편하게만 보였다. 화가 나면 상대방의 미운 점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공간이 정리되면 내 마음도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청소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단 크게 일을 벌인다.  옷을 다 꺼내 정리하기도 하고 가구의 배치를 바꿔보기도 한다. 그렇게 입주청소 수준으로 청소를 끝내고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가 없다. 내 앞에 놓였던 불편한 일들을 한 순간에 처리해버린 마법을 부린 기분마저 든다.


이렇게 쓰고 보니 화를 깨끗한 우리 집 만들기로 바꾼 내괜찮아 보인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다툼 뒤의 청소로  가장 만들고 싶었던 은 내 화가 나와 내 아이 해치지 않도록 마음속 천사를 키는 파수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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