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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07. 2022

엄마의 출장=아이의 기다림

13살 지구인 이야기(65)

"엄마 오늘 출장 갔다가 늦을 수 있어."

"엄마 왜 이렇게 출장이 많아?" 아이의 목소리가 평상시와 다르게 날이 서있다.

"교육청에서 도와달라고 해서 하는 거야. 학교평가단이야." 변명처럼 아이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낯설다.

"평가단? 뭔지 모르지만 멋걸?" 툴툴거리던 아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진다.  자동차 미러뒷자리에 앉은 아이를 보니 기분이 풀렸는지 웃고 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서  허세를 부렸다.

"그러게 **이 엄마가 일을 못해야 되는데. 일을 잘해가지는 꼭 이러네" 

허세라고 하기에는 그 스케일이 너무 작지만 아이 앞이니 이렇게 좀 내세워 아이의 이해를 받고 싶었다.


가끔 교육청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오는 출장들이 다. 각종 지원단, T/F팀 등 교육청 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는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일들은 배우면서도 하고  잘 아는  분야는 내 능력만큼 지원한다. 그런데 출장이 잦아지면 아이는 늘 기다려야 다. 지금에야 13살이나 되었으니 별로 걱정은 안 되지만 3~4년 전만 하더라도 읍면지역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출장 거리가 길어지면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져 아이가 걱정되기 일쑤였다. 육지 출장이라도 있는 날이면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후배가 아이의 할머니 집까지 아이를 데려다준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일찍부터 '엄마의 출장=기다림'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늘 이게 미안해서 가급적 이제는 꼭 해야 할 일만 하려고 한다. 그동안 부탁한 사람들이 겸연쩍어할까 봐 쉽사리 거절을 못했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크니 그 시절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나 싶다. 내가 중요하게 여겼어야 할 삶의 순간들을 놓쳐버린 기분도 든다. 그 시간에 더 눈을 마주쳐주고 손을 잡아줬다면 어땠을까 어린아이에게 기다림을 너무 일찍 알아버리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엄마보다 아이에게 인정받는 따뜻한 엄마 꿈꾼다. 사람은 꼭 겪어봐야 안다. 가을이 되어야 단풍이 드는 것처럼 엄마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부모로서 중요시해야 할 가치들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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