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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21. 2022

빈틈에서 자라는 아이

13살 지구인 이야기(67)

"엄마 우리 집에 난중일기 있어?"

"난중일기? 있을 걸?" 책꽂이에서 찾아 건네주니 어린이용 말고 어른들이 읽는 난중일기를 달라고 한다.

"그건 없을 텐데. 왜 필요해?"

"응. 갑자기 어른 책으로 읽어보고 싶어 졌어. 주말에 나랑 도서관 갈래?"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책 읽기 좋아하는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하면 아이가 어쩌다 엄마랑 한번 가준다 하는 장소였는데 먼저 가자고 해서 살짝 놀랐다. 그렇게 기분 좋은 약속을 하고 지난 주말 아이와 난중일기를 빌리러 갔다.


도서관을 가면 어릴 적에는 아이가 읽을 만한 책들을 내가 고르고는 했었다. 그런데 크고 나서는 아이가 읽을 책은 자기가 고른다며 어린이 자료실에 가고, 나는 일반 자료실로 갔다가 도서관 입구 잔디밭에서 만나고는 했다. 그랬던 아이가 나를 따라 일반자료실에 같이 들어가니 느낌이 새롭다.

"책 찾을 수 있겠어?" 혹시나 아이가 못 찾을까 봐 걱정스러워진다.

"내가 찾아볼게." 검색해서 청구기호를 출력하면 되는데 아이가 스스로 찾아본다니 그저 안 보는 척 멀리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도움이 가능한 거리에서 책을 고르며 서성이고 있을 때쯤 아이가 노란 책 하나를 들고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엄마! 찾았어!" 아이의 손을 보니 난중일기라고 한자로 적힌 책이 들려있었다.

"어떻게 찾았어?" 한자로 적히고 별다른 디자인이 안된 책이라서 찾기 어려웠을 텐데 궁금했다.

"역사 코너 가서 일기라고 쓰인 책을 찾았는 데 있었어." 아이는 소풍 가서 보물 찾기라도 한 듯이 설레어했다. 내가 찾던 책이 눈앞에 딱 보일 때의 그 짜릿함을 아이가 느낀 모양이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난중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엄마 이것 봐. 어떤 날은 날짜와 날씨만 있고 아무런 기록이 없어."

"장군님이 전쟁 준비로 바쁘셨나 보다."

"그런데 어렵지 않니? 재미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순신 장군의 일기를 지금 내가 몰래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엄마도 읽어봐."

"엄마. 이제 전쟁이 날 것 같아." 아이는 읽는 내내 흥미로운 부분이 나오면 나를 불렀다. 아기 때 그랬던 것처럼 '엄마 이것 봐 봐'가 나왔다.


아이는 자라오면서 늘 그랬다. 어릴 적 텔레비전도 혼자 넋 놓고 보는 적이 없었다. 혼자 깔깔거리다가도 항상 "엄마! 이것 봐 봐"하면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나를 크게 불러서 옆자리에 잡아두고는 했다.

오랜만이었다. 아이가 무언가를 보면서 나에게 이것 봐보라 하는 순간이. 독서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좋다는 책들을 항상 아이와 함께 읽거나 아이에게 권하곤 했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니 아이의 선택이 훨씬 중요해졌다. 다는 책이지만 아이가 멀리하는 책도 있었고 나는 재미없는데 어떤 책은 재미있다며 여러 번 읽기도 했다.


이번에 아이가 책을 빌리는 것을 보니 아이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아이가 손수 빌린 책들을 들여다보니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드로잉 책이다. 그런데 '어느 독일인의 삶'이라는 책이 있어서 이건 왜 빌렸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지나가면서 이 책도 있네? 하면서 관심을 표현했단다. 그래서 엄마 보라고 빌려왔다고 한다.

아이가 이 책들을 읽든 안 읽든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도서관 장서들 사이에서 책 기둥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며 책을 찾았던 경험이 아이에게 즐거운 경험이었나 보다.

"엄마, 내일 또 도서관에 갈래?" 아이의 제안이 유쾌하다. 그렇게 아이와 난 주말에 두 번 도서관을 갔다.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왔는데 가끔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라고 내 아이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을 지켜보다 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다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의 몰랐던 점이나 달라진 점을 발견하는 순간들의 합인 것 같다. 중학생이 되면 점점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늘어날 것이다. 아이와 나 사이의 틈이 생긴다는 게 가끔은 낯설겠지만 그 빈틈에서 아이가 자라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지켜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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