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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26. 2022

가을이 가기 전 따라비오름!

제주의 오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날씨가 맑은 날, 계절마다 올라보는 것이라고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지난 3월에 올라 보았던 따라비 오름을 가을의 끝자락인 11월 다시 올라본다. 봄과 가을 두 계절의 차이가 어떤 새로움을 줄지 기대가 된다.


따라비 오름은 3개의 원형 분화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막상 올라보면 다른 오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정상이다!' 하고 생각했지만 계속 발길이 어딘가로 이어진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능선을 따라 걸으며 제주 동쪽의 풍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오름이다.


사방이 트인 정상에서 바라보니 제주 동쪽 오름들, 방풍림으로 칸칸이 불규칙하게 나누어진 제주의 거친 땅, 한라산과 빙그르르 돌아가는 친환경 풍력 발전기, 저 멀리 남쪽 어김없이 제주의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이 오름에 올라가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다고 한 그 말들을 한 번 더 오늘 헤아려보게 된다.


정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준비해온 따끈한 차 한잔 마시며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보니 지난 몇 주 쉴 새 없이 일하며 모서리 가득했던 하루들에서 받았던 근심과 걱정들이 사그라을 느낀다. 정상으로 오는 길이 놓인 계단 길을 하나하나 밟으며 나의 날숨과 들숨을 오롯이 느끼는 시간이었다면, 정상에서는 머리와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찌꺼기를 청소하는 느낌이다. 늘 모니터를 앞에 두고 미간을 찌푸려가며 일하다 저 멀 산과 바다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니 일상의 부딪힘들이 다 사소해져 버린다.

정상 둘레를 따라 걷다 보면 분화구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나있다. 몇 백 미터 안 되는 길이지만 앞으로만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억새의 장관이 펼쳐진다. 억새들이 서쪽의 지는 햇빛을 받으며 바람으로 일렁이는 모습은 그 자리에 우리를 멈춰 서게 다. 앞서 내려간 친구가 바닥에 앉아 그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어 말없이 함께 앉았다. 가을이 되면 억새와 더불어 제주 오름 368개 중 가장 아름다운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고 하는데 왜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별오름은 억새가 장관이다라는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억새가 뭔가 소박한 거 같아."

친구의 말처럼 억새로 유명한 새별오름이 억새로 가득 차서 내가 그 속에 파묻히는 느낌이었다면, 따라비 오름의 억새는 제주의 바람이 더해져 그 바람을 따라 움직이며 바람과 어우러진다. 새별오름은 가을 오름의 왕, 따라비 오름은 가을 오름의 여왕이라고 할만하다.

바람 따라 움직이는 억새의 움직임과 소리, 바람 소리가 좋아 자리를 뜨기 힘들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처럼 이 소리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연신 사진을 찍어보지만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작가 백수린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서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비 오름은 눈으로 움직이는 억새뿐만 아니라 제주의 거친 바람이 만들어낸 소리로 한 번 내 내게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가을의 끝자락 따라비 오름을 나의 공간 리스트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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