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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27. 2022

오랜만의 데이트

13살 지구인 이야기(69)

"엄마 오랜만에 만화카페 갈래?"

아이가 금요일부터 주말에 만화카페를 가자고 한다. 자기가 읽어보고 싶은 만화책이 생겼단다. 6학년이 되고 나서는 어딜 가자고도 하지 않고, 내가 어디 가보자고 해도 한참을 망설이다 꼭 자기가 같이 가야 하는 곳이냐고 되묻는다. 그런 아이가 나보고 만화카페를 가자니! 이건 엄마인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자 하고 오늘 아이와 오랜만에 단 둘이 만화카페에 갔다.


쫄랑쫄랑 엄마인 내 뒤를 따르던 아이는 이제 없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이는 자기가 읽고 싶은 만화책을 고르고 자기만의 장소를 골라 들어간다. 대부분 사다리를 타고 가는 2층이다. 처음 아이와 왔을 때는 그 좁은 공간에 같이 들어가서 놀았는데 이젠 아이가 나보다도 크다 보니 둘이 들어가는 건 상상도 못 한다. 아이는 그렇게 만화책을 읽고 나는 나대로 책을 읽는다. 그렇게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점심 때가 다가오자 아이와 라면을 시켜서 한 그릇씩 먹는다. 계란도 넣지 않은 라면이지만 역시 만화방에서 먹는 라면이 제일로 맛있다.

"엄마 여기 라면 맛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이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로 맛있더라." 아이가 대답을 듣더니 웃는다.


두 시간을 채우고 나오는데 아이가 신었던 실내화를 포개어 바구니에 예쁘게도 놓아둔다.

"너 왜 이렇게 착하냐? 다른 아이들은 그냥 벗어두고 가는데 정리도 잘하네." 내 아이지만 참 착하다. 어디를 같이 가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도 않고 항상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정리를 잘한다. 집에서는 하지 않지만 집 밖에서는 참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 엄마의 칭찬에 아이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만화카페를 나와 아이의 머리카락이 길어서 미용실에 들렀다. 예전에는 가만히 미용사 분과 내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던 아이가 이젠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아이이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 아이가 어릴 적 귀엽게 했던 머리 스타일이 떠오른다. 눈썹 위로 약간 동그랗게 앞머리를 만들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로 앞머리가 눈썹 위로 올라가서는 안된다. 이유는 모르지만 눈썹이 보일 듯 말듯한 앞머리를 고수한다.

"앞머리는 눈썹 위로 올라가지 않게 해 주세요." 혹시나 아이가 걱정하고 있을까 봐 말했다.

"요즘 아이들 앞머리 함부로 못해요. 얼마나 예민한지 몰라요." 미용사님이 걱정 말라고 하시며 아이에게 물어보시고는 마음에 들게 잘 잘라주셨다.

미용실을 나와 아이가 원하는 문방구에 나들이도 가고, 1+1 아이스크림 쿠폰이 마침 있어 아이와 사이좋게 아이스크림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주말 오후가 다 지나갔다.


오랜만에 아이의 친구가 되어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니던 어릴 적 순간이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지만 이렇게 친구처럼 편안한 주말을 보낼 수 있는 것도 내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런 데이트도 중학생이 되면 아이의 친구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것이지만 그게 아이가 잘 자라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흔쾌히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오늘 돌아보니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늘 같은 속도로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내 손이 덜 가게 되는 고학년이 되니 아이와 나 사이의 시간이 속도감 있게 흐른다. 조금은 천천히 아이가 자랐으면 하고 바란다면 욕심일까 하다가도 얼른 커서 재즈 음악 들으면서 같이 맥주 한잔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모순인가 싶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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