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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28. 2022

뒤센 미소를 가진 아이

13살 지구인 이야기(70)

옷장 정리를 하다가 아이가 6~7살 때쯤 입었을 바지 하나를 발견했다. 다 정리한 줄 알았는데 작은 바지가 다른 옷 사이에 끼어 있었다. 바지를 펼쳐보니 작은 바지가 무척이나 귀엽다.

"와. 이것 봐. 너무 작다." 하며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다리에 갖다 대며 보여주었다.

"뭐야. 이거!!" 아이가 보자마자 웃더니 갑자기 바지를 자기 팔에 끼워본다.

"엄마, 이거 그냥 내 팔에 끼워도 작은데?"

아이의 팔에 끼워진 작은 바지의 모습을 보며 아이와 함께 한참 깔깔거리며 웃었다. 바지를 팔에 끼워볼 생각을 하다니 유쾌하다. 귀여운 바지 덕분에 아이의 반달 웃음을 오랜만에 오래도록 다.


며칠 전 후배가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읽다가 인위적으로 웃는 게 아니고 눈이 반달처럼 변하면서 진짜로 웃는 미소를 보고 뒤센 미소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 뒤센 미소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단연 내 아이였다며 연락이 왔다. 이런 미소를 가진 아이들은 높은 수준의 긍정성을 지녔으며 높은 수준의 회복탄력성을 통해 좋은 팔자를 누린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고 했다. 후배는 내게 이 멋진 사실을 알려주며 평생 행복할 팔자를 살 내 아이를 응원한다고 했다.


아이가 내게 처음 미소를 보여준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가 눈을 반달처럼 만들며 웃었다. 아이는 자라 유년기 내내 많이도 내게 그 미소를 보여주었다. 거실에서 혼자 놀다가도 방에서 나오는 나와 눈이 마주치 세상 밝게도 웃었다. 지금도 그 미소는 변함이 없지만 크면서 웃는 모습을 전처럼 보기는 힘들다. 래도 가끔 오늘처럼 시원하게 웃어주는 날은 나도 모르게 밖에서 데리고 들어온 하루의 피로가 한순간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내 핸드폰 배경 화면은 아직도 아이가 활짝 웃는 사진이다.


13살의 뒤센 미소를 가진 아이는 내일이 학급 학예회라며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부지런히 거실에서 기타를 연습하고 있다.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지만 제법 진지하다. 언젠가 "엄마, 버스킹!" 하면서 내 앞에 모자를 놓으며 기타를 연주하던 아이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늘 순식간에 나로 하여금 뒤센 미소를 짓게 만드는 아이. 어쩌면 아이는 뒤센 미소를 퍼뜨리려고 우주에서 내려온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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