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치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다. 아이가 다니는 치과는 아이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있다. 치과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여유가 있어서 아이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동네를 거닐었다.
"예전 이 길 끝에 있던 놀이터 기억나니?"
"저기 보이는 건가?" 아이가 멀리 보이는 놀이터를 가리키더니 뛰어간다.
"이거 뭐야! 놀이터가 왜 이렇게 작아!"나를 향해 뒤돌아보며 외친다.
"와! 이게 이렇게 작았었나?" 놀이기구 앞에서 키도 재보고 키를 낮춰서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보기도 한다.
13살 아이가 다시 그 놀이터에서 놀던 6살로 돌아간 듯하다. 요리조리 왔다 갔다 바삐도 움직인다. 치과 예약 시간이 다 되어 아쉽게 옛 놀이터의 만남은 순식간에 끝났다.
치과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며 아이가 혹시 한번 더 놀이터에 가도 되냐고 한다. 그러라고 했더니 아이는 또 달려서 그 놀이터로 간다.
여유가 있어 아이가 옛 놀이터와 반갑게 재회하도록 놀이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니 6년 전 어느 겨울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해 유달리 눈이 많이 온 날. 아이와 나는 강풍을 뚫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눈싸움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들다만 눈사람을 완성했었다. 코가 빨개지도록 놀다 들어온 그날의 장면들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펼쳐지는데 코 끝이 그때로 가 있는 것처럼 추워지며 찡해지는 것은 무엇인가 싶다.
"여기서 엄마랑 눈싸움했던 거 기억나?"
"기억나지! 눈이 엄청 왔었잖아!"
옛 놀이터에서 아이도 나도 옛 기억에 흠뻑 젖어본다.집에 와서 옛 사진첩을 찾아보니 아이가 눈 사람을 만들던 사진들과 둘이 어설프게 찍은 셀카 사진도 보인다.
<해리포터>에 포트키라는 것이 있다.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시켜주는 것인데 오늘 내게는 이 옛 놀이터가 포트키가 되어 아이와 나를 과거의 행복했던 그 시절로 데려다주었다.
항상 아이와 나 사이에는 배경처럼 이런 공간들이 있었다. 이런 공간들은 아이와 나를 만들어 준 고마운 공간이다.
작가 유현준은 <당신의 별자리는 어디인가요?>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의 공간들을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채색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 나는 옛 놀이터에 하얀 채색을 하고 왔다. 그 안에는 눈처럼 맑은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바라보며 순수하고깨끗한 마음을 배운 엄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