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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an 14. 2023

작은 성공의 기분

조만간 이사를 갈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아이는 이사 갈 집 근처로 학원을 미리 다니고 있다. 매일 저녁을 먹고 아이와 서둘러 학원을 간다.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퇴근 시간 도심을 거쳐 지나가야 하기에 가는데만 40여 분이 족히 걸린다. 아이가 학원에 들어가면 나는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는 달콤한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매일 저녁 운전하고 2시간을 기다리며 돌아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야 선배 언니들이 "너 아이가 중학생 돼봐. 퇴근 후 약속을 잡을 수가 없어!"라고 말하던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 아이도 나도 예비 중학생의 새로운 학원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생각보다 학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원 숙제가 너무 많다며 툴툴대기도 하고, 숙제를 하다가 모르겠다며 씩씩대기도 하더니 이제는 그 횟수가 많이 줄었다. 좋은 학원 선생님들을 만났는지 수업도 이해가 잘 된다고 하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했던 농담도 내게 전해주며 재미있어한다.


오늘도 아이가 끝나는 학원 시간에 맞춰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저 멀리 아이의 실루엣이 학원 근처에서 보인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 싫어라 하는 것을 잘 알지만 난 늘 팔을 높이 들어 아이에게 손을 흔든다. 그러면 아이도 주변을 살피고는 조금 손을 흔들어 준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 가 기분이 좋은지 손을 연신 흔들어댄다.

"무슨 좋은 일 있어?" 내 말을 듣자마자 아이는 무슨 유쾌한 비밀 이야기라도 내게 하듯이 주변을 살핀다.

"엄마, 나 영어 단어시험 백점 맞았어."

"전부 다?" 아이는 승자의 미소로 가득한 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 엄마 몰래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갔구나. 대단하다."

"할머니한테 전화해야겠어." 아이는 정말 기분이 좋은지 할머니에게도 전화해서 알려줘야겠다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기를 꺼내든다. 학원 영어 단어 시험을 백점 맞았다고 할머니에게 전화하는 14살 아이라니. 얼마나 신이 났으면 이럴까 싶어 같이 웃게 된다.


아이는 매번 영어 수업에 가면 80개 정도의 단어 시험을 본다고 했다. 뭔가 진득이 외우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성향을 가진 아이라 이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10개 내외를 틀렸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80개나 되는 단어를 다 맞은 거니 본인 스스로 놀라운 모양이다. 어떤 시험이든 다 맞는다는 것은 사람을 무척 기분 좋게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아이가 작은 성공의 기분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 작지만 짜릿한 오늘의 기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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