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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an 15. 2023

당근 놀이

이사 준비로 연일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크지도 않은 집에 무슨 물건들이 이렇게 많은지 새해가 되던 날부터 호기롭게 정리를 시작했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여러 번 멈추게 된다. 서랍 깊숙한 곳에 있던 아이의 돌잔치 사진을 보며 미소 짓게 되기도 하고, 빛바랜 책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도 다. 추억에만 젖으면 좋으련만 새 상품인데 사용기한이 지난 화장품, 약, 식료품을 만나면 나 스스로를 꾸짖게 되기도 한다. 정리를 하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은 당근마켓에 올려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를 하곤 하는데 '당근!'하고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에 늘 귀는 쫑긋하게 된다.

"엄마 오늘도 당근 놀이해?" 수가 많아지다 보니 아이도 같이 당근 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엄마 당근 울렸어!"


오늘도 더 짐을 줄여보자 마음을 잡고 소파에 앉았다. 저녁을 먹고 집을 둘러보니 오늘의 타깃이 눈에 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은 보드게임들이다. 사실 이 물건들은 진즉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미루고 미뤄둔 것들이다. 하나하나 다 확인해서 카드나 구성품들이 다 있는지 확인하는 게 시간도 걸리고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씩 꺼내보고 있는데 아이가 자기가 도와주냐고 물었다.


아이는 알아서 카드를 한 장씩 세고 부족한 카드가 있는지 확인하포스트잍을 붙여 분리를 다.

"엄마 이건 카드가 너무 없어서 그냥 버려야겠어."

자기 나름대로 판단을 하며 물건을 정리하고 얼마 정도에 물건을 올리는 게 적당한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확인해서 물건을 정리하고 상태를 알려주면 나는 사진을 찍고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렸다. 아이가 도와준 덕분에 금방 끝났다.

"오늘 우리 아들 덕분에 당근놀이 금방 끝났네."

"엄마 이제는 나 시키라니까!"

"잠깐! 아주 중요한 거 남았어!"

"뭔데? 또 보드게임이 있어?"

나는 재빨리 핸드폰의 음성녹음 기능을 켰다.

"까 한말 다시 해봐." 아이는 눈치를 채고 씩 웃더니 한번 더 말해주었고 아이의 말은 내 핸드폰에 잘 저장되었다.


이사를 여러 번 해봤지만 홀로 이사 준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모든 일을 척척지만 이 역시도 나이가 드니 쉽게 지쳐버린다. 한참 혼자 정리하고 이사 준비를 하다 보면 텅 빈 겨울 들판에 서있는 나무가 된 기분도 든다. 오늘 새삼 알았다. 내게는 어느덧 커서 든든한 아들이 있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는 혼자 다 하려고 하지 않을 생각이다. 슈퍼 엄마보다는 이와 함께 짐을 나눠 들고 손을 잡고 가 보려고 한다. 나란히 걸어갈 때 이제는 나보다 높아진 아이의 어깨와 따뜻한 마음에 가끔은 대며 숨을 고를 시간들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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