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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an 24. 2023

해리포터 보다 엄마 일기장

"엄마! 이거 뭐야? 엄마 일기장이야?"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이가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일기장? 엄마 일기 안 쓰는데?" 흐트러진 짐을 정리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것 봐봐! 엄마 이름이 쓰여있잖아!" 아이가 잔뜩 신나는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아이의 손에는 오래된 공책 몇 권이 들려있었다.

가만 보니 내가 초등학교 아니 정확히는 국민학교 시절 일기장이었다. 예전에 본가에 갔을 때 아버지가 챙겨두셨다면서 내게 건네주었던 것인데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엄마 이거 읽어봐도 돼?" 어릴 적 일기장이지만 나의 흑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면 창피하기에 그래도 확인해 봐야겠다 싶어 일기장을 건네받았다.

"와... 칸나 공책!" 공책을 건네받는데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공책 상단의 둘리 그림은 또 어찌나 반가운지. 공책을 걷어보니 일기들이 하나씩 보인다. '내 글씨가 이랬었나?' 5학년인 내 글씨가 왜 그리 낯설어 보이는지. 이삿짐을 정리하던 참이라 "읽어봐도 되는데 엄마 놀리면 안 된다!" 유일한 조건을 달고 대충 보고 아이에게 일기장을 건넸다.


아이는 그날 밤 내 일기장 4권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볼웃음이 가득하다.

"엄마! 외삼촌들이랑은 왜 이리 많이 싸웠어?"

"엄마! 그때도 공부만 했었네. 이 시험 점수 봐봐."

"세상에 결론말할 수 없다니! 왜 일기장에도 비밀이 있는 거야!" 아이는  돼버린 드라마의 결말이라도 본 듯 흥분한다.

"엄마 이 부분 봐봐. 이때도 글을 잘 썼네." 적당한 칭찬을 한 번씩 넣어주기까지 한다.


엄마의 과거를 캐내는 탐정이라도 된 양 일기를 하나씩 읽으며 질문을 해댔다. 즉문즉답으로 이뤄진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나질 않았다. 계속 "엄마!" 소리가 들려오니 일을 하다가도 멈추기를 여러 번 아이에게 늦었으니 이제 그만 읽으라고 했더니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 다 읽고 잘래. 이건 뭐 내가 읽은 어느 책 보다 재미있는 걸?"

"해리포터 보다 엄마 일기장이 더 재미있어."


아이 내 일기를 하나하나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아이는 알았을 것이다. 세상 다 아는 것처럼 하는 엄마도 어릴 때는 고작 12살짜리 맞춤법을 틀리는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너무 거대하 느껴지고, 자신의 존재가 하찮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사춘기라고 한다. 그런 시기를 엄마도 똑같이 어리숙하게 지나왔음을 알았으니 아이는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처럼 똑같이 새 학기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같이 반이 되고 싶어 했고, 시험을 볼 때는 잘 보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는 평범한 사실이 아이에게는 안도감을 주었 것다. 나만 할 것 같았던 고민들이, 불안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아이는 조금 편안하게 자기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내 일기장이 무척 고마워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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