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전혀 인연은 없지만 꼭 한번 만나서 현실 세계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작가 김영하가 그렇다.사전 예약으로 책을 사서 읽게 만들고 새책에 과감하게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가다. 그 작가가 멀리 제주까지 온다는 지역 도서관 공지를우연히 봤다. 참가 신청은 며칠 뒤었다.
"대박! 이건 가야 돼! 김영하가 제주에 온대."
아이의 방으로 달려가서 말을 했더니 아이의 작은 눈도 커진다.
"김영하 작가? 실물을 영접하는 거야?" 아이도 내가 작가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기에 목소리가 올라간다.
"응. 신청이 성공하면!"
"되면 엄마한테는 대박인데! 가려면 비싸?"
"도서관 사업이라 돈은 안내."
"엄마가 꼭 됐으면 좋겠다. 언제 신청이야?"
"모레! 벌써 떨려!" 조용한 주말 아침 우리 집은 그렇게나 작가 김영하로 내내 시끄러웠다.
신청시간은 아침 10시. 5분 전부터 로그인을 하고 신청완료가 된 순간 또 한 번 우리 집은 요란했다. "엄마 진짜 된 거 맞지?" 아이는 옆에서 혹시나 하는 걱정을 더해 여러 번 확인한다.
드디어 만나러 가는 날. 정확히는 무대 위의 작가를 보러 가는 날. 서귀포시에서 하다 보니 제주시에서 한 시간도 넘게 가야 하지만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행복하다. 역시나 작가의 강연은 훌륭했다. 편안한 목소리로 주저 없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데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듣고 지금 읽고 있는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책이 떠오르며 인간에게 있어 이야기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작가는 모든 기억이 다 내게 머무는 게 아니지만 그 기억에 감정이 덧입혀지면 오래도록 기억된다고 했다. 작가의 강연도 내게는 기분 좋은 감정이 덧입혀져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예전에는 싫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과 같은 선호에 대한 질문이었다. 꼭 그런 걸 가지고 있어야 하냐며 다소 삐딱했던 나였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것의 가치를 말이다. 감탄하는 삶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리스트를 하나씩 더해나가는 인생일 것이다. 분명어떤 대상을 애정하는 일은삶에 큰 힘을 주는 것임이 틀림없다.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을 하는 이유로 일상을 여행하는 힘을 얻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말처럼 이런 일들도일상을 여행할 힘을 주는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