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드는 생각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뭐를 담아야 무엇을 위해 살아갈 수 있지?
연차를 4일 연속 내는 패기로 떠나는 치앙마이에 뭐가 있을까? 참고로 아직 비행기표는 예매하지 않았다. 일단 연차를 올렸을 뿐이고 떠날 거라고 떠들었을 뿐이고 일단 가고 싶은 날짜를 봐두었을 뿐이고 이렇게 돈 나갈 일이 또 생겼을 뿐이다.
5월 초에는 이미 봄이 와서 벌써 언제 이렇게 따듯해졌지 했다가 금방 더워지는 달이라 일주일 갔다 오는 사이 계절은 저 멀리 앞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편하게 놀고먹는 직장인이라고 해도 길게 연차를 내버리는 건 눈치가 보이긴 하다. 일단 4개 다 올리긴 했는데, 금요일은 취소해야 하나 싶다가 하루 갔다가 주말에 쉬는 거랑 다 쓰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으려나 싶은 애매한 마음.
난 참 애매한 인간이다. 애매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29살 (아직 만 27살), 서른이 엄청 먼 일인 줄 알았던 시간이 점차 다가와 앞에서 압박을 준다.
넌 그동안 뭐 했니?
감정에 휩싸여서 고민만 하고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시기들을 지나 이제 와서 돌아보니 아 그때 이대로 쭉 밀고 나갈걸, 망설이지 말고 해 볼걸, 눈에 보이는 계획들 그리고 실천하지 못했던 아쉬움. 그래도 나름 만족하는 29살 시간이지만, 마지막 아쉬운 건 외국에 살아보지 못했다는 결핍과 욕망.
참 웃긴다니까, 토익 700점도 못 넘겨서 시험도 못 보고, 공부하기 싫어서 책도 안 열어보는 주제에 왜 자꾸 쓸데없는 로망에 가득 차 있는지 그래도 놓지 못하는 그리움.
한 번은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 저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갈 거예요.’라고 내가 말했다고, 비행기의 용도를 제대로 알까 싶었던 어린 나이에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걸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나도 금방 잊어버리는 걸지도 모를 왜곡된 기억과 감정들, 그래도 가장 힘들고 예민한 시절에 상상으로만 그렸던 영국에 딱 도착했던 22살 그 순간에 느꼈던 동화 같은 설렘.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에 들어가 기억도 안 나는 존재감 없는 등장인물이 되어 그 세계를 염탐하는 기분으로 걸어 다녔다. 환영받을 이유도 그렇다고 거절당할 이유도 없는 지나가는 손님처럼 안녕히 오고 가고 수많은 관광객 중 하나, 아예 그곳에 섞여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근원은 따로 있으니까, 버릴 수가 있겠어.
그래도 한 번은 모든 연결고리에서 벗어나 수많은 군중 속에 놓였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뭘까, 외로움, 힘듦, 고요함, 또는 자유.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저 궁금하고 실험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내 삶은 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의 예시니까.
난 예전부터 생각했다. 한 번 로그아웃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게임이라고, 그래서 더 재미를 추구하는 어린아이로 살고 싶을지도. 또 다른 삶이 있을지 아니면 다른 세계로 넘어갈지 내가 직접 겪어 볼 수 없으니까, 그저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이 세상 어딘가 너머에 있는 우주 속을 떠다닐지 어떻게 알아.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이 가장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미래일지도, 언제 또 지금처럼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시기에 태어날 수 있을지 알겠어.
그저 이 행운을 마음껏 즐기다가 가벼운 끝을 맺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나의 기록이다.
그래서 이 글을 남기는 3월 중순 어느 날,
여기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
퇴근하고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