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운의 시네마틱 레버리 [홀리모터스(2)]

2화. 우리는 매일 몇 개의 얼굴을 쓰고 살아가는가

by 서도운

2화. 우리는 매일 몇 개의 얼굴을 쓰고 살아가는가


『홀리 모터스』 속 오스카, 그리고 가면의 철학


1. 영화의 출발

영화는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카메라가 응시하는 것은 감독 자신, 레오 카락스다.

그는 잠에서 깨어난 듯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벽을 더듬는다.


그 벽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상징하듯 단단하고 무의미하다.

하지만 손끝으로 ‘열쇠구멍’을 찾아내고 손가락을 밀어 넣는 순간,

작은 기계장치가 돌아가며 벽은 문이 된다.


그 너머엔 극장이 있다.

관객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

그들은 이미 영화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우리가 스크린을 보는 순간인가,

아니면 누군가 우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인가?”


이 질문을 통해 카락스는 감독과 관객, 현실과 환상,

주체와 객체의 위치를 교란시킨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우리가 아는 극장이 아닌,

수면과 침묵의 극장이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을

아기와 개가 배회한다.


그들은 언어도, 사고도, 서사도 없이

마치 감각 그 자체로 흘러간다.


아기는 순수한 감각의 형상,

개는 무의식과 본능의 동반자다.


영화는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라,

감각의 침입이자 존재의 틈입이다.


『홀리 모터스』는 우리가 기대하던 영화 문법을 해체하고

그 잔해 속에서 묻는다.


“무엇이 우리를 진짜 살아 있게 만드는가?”




2. 사업가인 오스카


고급 주택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오스카.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전화로 돈 이야기를 한다.


그의 첫 번째 ‘역할’은 성공한 사업가다.


어딘가에서 막 깨어난 듯한 얼굴로

그는 익숙하게 ‘현실’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현실은, 진짜가 아니다.


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매일 어떤 얼굴로 세상에 등장하는가?”


우리가 입는 옷, 짓는 표정, 말하는 언어는

과연 우리 자신의 것인가?


현대인이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가면’의 전형이자

정체성의 허상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삶은 본래 연기된 것이다.


카락스는 가장 먼저

‘진짜처럼 보이는 것’을 무대에 올려놓는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해부이자 고발이다.




3. 노숙자 여인


오스카는 양복을 벗고 누더기를 입는다.

그는 파리의 거리를 기어 다니며,

쇠약하고 더러운 노숙자 여인이 된다.


그저 존재한다.

그저 동전을 요구할 뿐이다.


“이제 많이 늙었는데, 난 매일 두려워…

난 절대 죽지 않을 거야.”


그는 가장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로

타인의 무관심을 감내하며

침묵 속에서도 끈질기게 연기한다.


이 배역은 직전의 ‘성공한 사업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양복과 누더기, 사무실과 거리,

권위와 무시—극단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인간이 하루 동안 수행하는 두 개의 가면이다.


카락스는 말한다.


“정체성은 실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순간에도

오스카는 배역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연기는

수행이 아니라 생존이고,

저항이며,

존재의 고집이다.


그리하여 이 장면은 묻는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현실처럼 스쳐 지나가는가?”




다음 화에서는,

감정 없는 욕망의 연기—

모션캡처와 괴물의 형상으로 들어갑니다.

기억 속 아날로그 예술과

기계적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가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표지이미지 출처: 영화 『홀리 모터스』 공식 포스터
배급: Wild Bunch / 국내 수입사 인터그림
사용 목적: 비평 및 리뷰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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