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꿈의 문을 열며 – 『홀리 모터스』와 레오 카락스
※ 이 글은 영화를 본 분들,
혹은 영화는 보지 않더라도 그 감정의 결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줄거리와 장면에 대한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니, 감상 전엔 살짝 주의해주세요.
우리는 첫걸음을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시적인 꿈으로 빠져들어 보자.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 이 작품은 예술영화라는 말조차 낯설게 만들 만큼, 장면과 인물, 감정과 공간이 흐르는 듯 이어지다가도 어느 순간 낯선 틈으로 미끄러진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찬란한 찬사와 함께 기억하지만, 동시에 그 혼란스러운 구성이 이질적이라 느껴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상황은 예고 없이 전환되고, 인물의 감정은 선형이 아닌 파편처럼 흩어진다. 우리는 때때로 그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주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이 영화가 의도한 진실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홀리 모터스』는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감각과 질문을 남긴다.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삶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의 각 장면이 시사함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감각적인 느낌을 선사해 주려 한다. 특히 영화의 해석이 힘든 분에게 감성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주고자 한다.
영화의 현실적인 배경을 분석하려면, 우리는 먼저 이 기묘한 꿈을 꾸어낸 감독, 레오 카락스라는 인물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는 프랑스 누벨바그, 즉 ‘새로운 물결’이라 불린 영화 운동의 깊은 영향을 받은 작가로, 프랑스 예술영화의 가장 외로운 시인 중 한 명이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에 걸쳐 프랑스에서 일어난, 전통적 영화 문법에 대한 반란이었다. 대형 스튜디오 중심의 고전적 서사를 거부하고, 감독 개인의 감정과 주관,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을 전면에 드러내는 새로운 영화들이 태동했다. 이 운동은 단순한 미학의 변화가 아니라, 전후 세대가 품은 존재론적 질문의 연장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정치적·사회적 재건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의 전통, 권위, 보수성에 깊은 회의와 염증을 느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곧, 카메라를 통해 삶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누벨바그는 그렇게 태어났다. 감정의 진실, 일상의 조각, 그리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사유를 담아내려는 시도로.
레오 카락스의 누벨바그 성향은 그의 첫 작품부터 드러났고, 영화 제작 내내 그 맥락 속에서 숨 쉬었다. 그의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Boy Meets Girl, 1984)』는 흑백 화면 속에 쓸쓸한 감성과 젊은 고독을 담아낸 시적 독백이었다.
누벨바그의 수장 장 뤽 고다르의 그림자를 어깨에 이고 있지만, 그 어두운 골목과 차가운 도시의 질감 위에 감정의 순결함을 끼얹는 방식은 명백히 카락스만의 언어였다.
카락스의 영화는 언제나 외부와 단절된 세계, 내면으로 침잠하는 감정의 파편들로 가득하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세계를 병적인 자폐증에 의한 단절이라 평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현실을 해석하는 그의 가장 날것의 방식이다. 그는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그 외면 속에 가장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을 뿐이다.
『나쁜 피(Mauvais Sang, 1986)』는 사랑과 배신, 청춘과 죽음을 강렬한 색채와 리듬으로 풀어내며, 감정과 영화적 형식이 충돌하고 뒤섞이는 몽환적 세계를 창조한다.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 1991)』에서는 거리의 광기와 사랑의 파멸을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다리 위에서 펼치며, 도시를 무대로 한 낭만과 절망의 교차점을 시처럼 그려낸다.
흥미롭게도, ‘레오 카락스(Leos Carax)’라는 이름 자체도 하나의 영화적 연출이다. 그는 본명인 알렉스(Alex)와 배우를 상징하는 오스카(Oscar)를 결합해, 스스로에게 가면과도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이름은 곧 정체성의 해체와 연기의 연속선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자신, 그리고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평생의 질문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자의 또 다른 서명이었다.
이러한 영화들은 단순한 감독의 이력이 아니다. 누벨바그 이후 시대의 감각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며, 레오 카락스라는 존재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던지고 있던 질문의 변주다.
“삶은 무엇이며, 그 삶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오랜 침묵 끝에 등장한 『홀리 모터스』는, 그 질문의 가장 자유롭고 가장 아픈 형상화였다.
다음 화에서는, 『홀리 모터스』의 기묘한 세계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려 한다. 영화가 시작되는 그 어둠의 문 너머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영화의 법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삶이라는 무대에 선 배우 '오스카'를 만나게 될 것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영화 『홀리 모터스』 공식 포스터
배급: Wild Bunch / 국내 수입사 인터그림
사용 목적: 비평 및 리뷰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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