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기계적 욕망과 야만의 귀환
오스카는 이번엔 전신에 센서를 부착한, 타이트한 검은 슈트를 입고 모션캡처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이제 그의 몸은 감정과 존재를 담는 매개체가 아니라, 데이터로 전환되는 신체가 된다.
그는 혼자 고개를 꺾고, 몸을 비틀고, 칼을 휘두르고, 구르는 격렬한 액션을 수행한다.
그 연기는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는 감각은 없다. 움직임만 있고, 감정은 없다.
이윽고 여성 연기자와의 이중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남성과 여성, 두 개의 타이트한 신체가 맞부딪히며, 마치 교미처럼 유사 성행위를 연기한다.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그 음향은 리얼리즘을 넘어서 기괴한 리듬으로 증폭된다.
그 장면은 성적인 것인 동시에, 동물적인 본능으로 과장된 욕망의 이미지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닌,
욕망을 연기하는 기호의 집합이다.
이윽고 화면에 떠오르는 것은 파충류 같은 괴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그들은 괴물이 되었고, 그 괴물은 욕망을 흉내 내지만, 그 욕망은 살아 있지 않다.
이 장면은 단지 성과 신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모션캡처 슈트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시각적으로 극단화한다.
신체는 자율성을 잃고, 욕망조차도 알고리즘 속에서 모사된다.
연기하는 자는 점점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재현된 껍데기’로 퇴화한다.
그러나 이 기괴하고 차가운 장면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레오 카락스 자신이다.
그는 늘 신체의 고통, 감정의 파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의 진실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홀리 모터스』를 내놓기까지, 그는 13년간 영화를 찍지 못했고, 그 시간은 예술가로서의 침묵과 소외, 피로와 절망의 시간이었다.
모션캡처 괴물은 단지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카락스 자신이 된 하나의 형상,
예술의 본질을 갈망하면서도 점점 기술과 기호 속에 매몰되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 초상화일 수 있다.
오스카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하고 있다.
그 연기는 감정 없는 것이지만,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계속되는 연기,
즉 삶 자체의 반복이자 저항이다.
카락스는 이 장면에서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살아 있는 척을 하게 되었는가?”
“욕망조차 타인의 시선에 맞춰 연기될 때,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단지 오스카에게가 아니라, 이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오스카는 이번엔 완전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다.
‘무슈 메르드(Monsieur Merde)’라는 이름의 기괴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 그는,
녹색 옷에 붉은 머리, 병든 눈, 기형적인 몸을 하고, 파리의 묘지 속 어둠을 뚫고 기어 나온다.
그는 언어를 버리고, 문명을 무시한 채, 본능만으로 살아 움직이는 야만의 잔재다.
하수구 아래에서 태어나, 거리의 부랑자들조차 외면한 시궁쥐 같은 존재.
그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 우리가 외면하며 지나쳐온 모든 것의 형상이다.
기이한 묘지의 비석에는 웹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다.
죽음마저 상업화된 시대. 그는 그곳에서 추모의 꽃을 먹는다.
하지만 그 꽃은 아름답지도, 맛있지도 않다. 그는 그것을 뱉어낸다.
아름다움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가 등장할 때 흐르는 음악은 마치 진혼곡 같다.
하지만 그 음악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문명이라는 허위의식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리다.
그는 한 패션 촬영 현장을 침범한다.
사진사는 화려하게 꾸며진 모델을 보며 말한다. “아름다워.”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오스카가 나타나자, 또 말한다.
“끔찍해. 그런데 너무 훌륭해.”
아름다움과 혐오가 같은 페이지에 실린다.
그는 난쟁이, 거인, 괴물—그저 ‘인간적인 것’으로 묶여 소비된다.
그 즉시 그 말을 강조하는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그는 자신을 소비하는 시선에 저항하고, 그 말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모델을 데려간다.
꽃잎으로 가득한 숨 막히는 공간, 지폐를 먹고 담배를 피우며
오스카는 마치 제사를 치르듯 기이한 행위들을 반복한다.
모델은 처음엔 경계하지만, 이내 호기심을 보인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지시하지만, 모델은 순순히 따르며 협력한다.
그녀의 노출된 옷으로 오스카는 이슬람의 부르카를 만든다.
몸은 드러나지만, 다시 가려지고, 신성은 왜곡된다.
그는 털로 덮인 벌거벗은 몸으로 기묘한 종교의식을 치르듯 움직인다.
그리고 그녀와 나란히 꽃잎 위에 누운 마지막 장면은
어딘가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연상시킨다.
가장 추악한 것과 가장 거룩한 것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순간.
카락스는 말한다.
진짜 추함은 무엇인가? 진짜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예술은 욕망을 순화하는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가?
무슈 메르드는 오스카의 괴물적인 자아이며,
오스카는 결국 카락스의 얼굴 없는 얼굴이다.
그는 문명과 예술이 만든 모든 경계를 부수며, 가장 날 것의 진실을 몸으로 살아내는 존재다.
그는 해석되지 않기를 원하며, 그저 존재함으로써 모든 것을 훼손하고 다시 태어나게 한다.
다음 화에서는,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여기는 ‘가족’이라는 무대 속
가장 인간적인 감정조차
‘역할’로 분해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감정이 진짜가 될 수 없는 세계,
그 안에서 우리는 진심을 연기할 수 있을까?
표지이미지 출처: 영화 『홀리 모터스』 공식 포스터
배급: Wild Bunch / 국내 수입사 인터그림
사용 목적: 비평 및 리뷰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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