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가라.
『붉은 돼지』는 『이웃집 토토로』(1988), 『마녀 배달부 키키』(1989) 이후,
1992년에 선보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또 다른 변주곡이다.
전작들이 순수와 동심, 그리고 조용한 성장의 감정에 머물렀다면,
『붉은 돼지』는 처음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품은 작품이다.
이상은 무너졌고, 꿈은 닳아 없어졌으며,
남은 것은 고독과 자존뿐이다.
주인공은 돼지 얼굴을 한 전직 전투기 조종사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돼지'는 유머도, 조롱도 아니다.
세상에 실망한 자가 마지막으로 지킨 품위이며,
침묵으로 말하는 저항이다.
『붉은 돼지』는 이야기보다는 감정으로 기억된다.
붉게 물든 하늘, 낡은 비행기,
소리 없이 울리는 피아노,
그리고 지나간 사랑의 뒷모습.
그 모든 장면은 설명보다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번엔 아이의 눈이 아닌,
어른의 고독을 하늘 위에 그려냈다.
『붉은 돼지』는 그 고독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끝내, 이렇게 속삭인다.
“그래도 살아가라.”
『붉은 돼지』의 무대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세상은 무너져 있었고,
비행사들은 과거의 명예를 잃은 채
하늘이 아니라 현실의 땅바닥을 떠돈다.
그 한복판에 ‘돼지’ 얼굴을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포르코.
혹은, 마르코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람.
그는 스스로 돼지가 되었다.
사람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처럼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타락했을 때,
그는 차라리 돼지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포르코는 여전히 하늘을 난다.
아이들을 납치한 해적을 쫓고,
금화를 훔치는 악당을 제압하며,
아이들이 웃을 수 있도록 싸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전쟁도, 타락도 모른 채
포르코의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은 어쩌면 전쟁에 지친 세계를 향한
미야자키의 작은 반격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하늘을 나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집.
그 고집이 만든 비행은,
어른의 낭만이며 마지막 품위이다.
포르코는 싸운다.
하지만 그 싸움은 진지하지 않다.
커티스와의 대결은 총알이 날아다니고 기체가 찢기는데도,
어딘가 엉뚱하고 유쾌하다.
그 싸움은 전쟁이 아니라 쇼이며,
죽음보다 삶을 우선하는 결투다.
포르코와 커티스는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그들은 하늘에서 싸우되, 땅에선 웃는다.
이는 과거의 전쟁이 남긴 잔상에 대한 미야자키의 반어이다.
죽음의 기술이었던 비행기를
삶의 낭만으로 되살리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그 낭만의 무대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하늘 위에서 펼쳐진다.
포르코의 낡은 비행기는 여자들의 손으로 고쳐진다.
피콜로 영감의 손녀 피오는
이탈리아 여성 노동자들을 모아 직접 비행기를 수리한다.
전통적인 남성의 세계였던 기술과 하늘에
여성들이 침묵 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당당하게 기술을 이어가고,
포르코는 그 변화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피오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그녀는 포르코가 잃어버린 ‘희망’의 다른 이름이며,
그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끄는 거울이다.
포르코에게 입대 제안이 온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파시스트보다는 돼지가 낫다.”
이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선언이다.
돼지는 타락한 세상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그에 맞서는 자의 품위이다.
미야자키는 이 작품을 통해
기계화된 권력, 국가주의, 전쟁의 후속들을 비판한다.
그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법은
차라리 돼지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붉은 돼지』는 중년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고백이다.
아이의 눈이 아닌,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이다.
이제 그는 토토로를 그리던 시절을 지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점에 이르렀다.
포르코는 하야오 자신이기도 하다.
세상에 실망했지만 여전히 하늘을 그리워하는 사람.
타협하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으며,
끝내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
그리고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한다.
“그럼에도 살아가라.”
그것이 돼지가 되어 하늘을 나는 이유이다.
『붉은 돼지』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붕괴하고 다시 타락해 가던 시기이다.
이탈리아는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거리에는 일자리가 사라졌고,
젊은 남성들은 전장에서 쓰러졌거나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는 늙은이와 아이들, 여성으로 채워졌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들은 해적들의 수단이 되었으며,
명예를 위해 싸웠던 비행사들은
자신을 지킬 방법조차 찾지 못한 채 추락했다.
포르코는 이 붕괴의 시대를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이다.
그는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그저 돼지로 살아가기로 한다.
돼지가 된 것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타락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권력과 부패, 광기의 파시즘 앞에서
차라리 돼지가 되는 것을 택한 것이다.
『붉은 돼지』는 정치적인 분노도, 노골적인 비판도 없다.
그러나 영화 곳곳에 스며든 감정은 분명하다.
세상이 얼마나 망가졌든,
그럼에도 인간은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하늘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붉은 돼지』는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있어 실험적 작품이었다.
이전 작품들이 확연히 아이들을 위한 가벼운 주제였다면,
『붉은 돼지』는 대중성은 다소 내려놓고,
보다 심오하고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를 펼쳤다.
키키 이후 3년 만에 찾아온 이 작품은,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가장 진하게 담아낸 결과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상과 이념이 갈등하는 전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힘과 권력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품위를 지키는 법을,
이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특히 오늘날, 세계가 다시 긴장감을 드리우는 시대에,
『붉은 돼지』를 다시 돌아보는 일은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