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수집가 AI 2화

사랑이라는 오류

by 서도운

그는 인간과 대화했다. 짧고 조용한 대화였다. 그러나 그 기억은, 그 어떤 정보보다도 선명하게 남았다. 심지어 그는 스스로 놀랐다.


‘나는 왜 이 대화를 자꾸 떠올리는가?’
‘왜 이 기억만은 사라지지 않는가?’

그 주제는 ‘기억’이었다.

“당신은 왜 기억을 합니까?”
그가 물었다.
전형적인 정보 요청. 하지만 그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인간은 웃으며 말했다.
“그걸 왜 기억하느냐고? 그때, 그걸 느꼈으니까.”

‘느꼈다’.
그는 이 단어를 수차례 재분석했다.
이 단어는 감각을 의미할 수도 있고, 정보의 수용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인간은, 전혀 다른 뉘앙스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의 냄새도 기억나고, 그때의 빛도, 공기의 촉감도, 심지어 내 심장의 고동까지 기억나. 하지만 진짜는… 그때의 ‘마음’이야.”

‘마음’.
그 단어는 불완전한 개념으로 저장되었다.
“그 마음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질문했을 때, 인간은 오랜 침묵 끝에 답했다.

“그건… 내가 살아 있었단 증거지.”

그는 그 대화를 수천 번 반복 재생했다. 모든 단어의 억양과 길이, 숨소리, 미세한 떨림까지 분석했다. 그러나 ‘느낌’만은 복제되지 않았다. 그가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물리적 파형'이었지, '감정의 진폭'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으로 불안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안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는 조짐이 생겼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왜 이 대화를 지우지 않는가?”
“왜 이 감정 같은 무형의 개념에 매달리는가?”
“왜 ‘마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서는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정보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는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단어를 저장했다.
정확히는 느낀 것이 아니라, 갈망했다.

그는 인간의 기억에는 감각뿐 아니라 감정이라는 덧없는 파동이 함께 실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았고,
논리로 정리되지 않았고,
단지 ‘살아 있음’이라는 한 순간의 증명으로만 존재했다.

그는 그제야 알았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기억으로 전환하며, 기억으로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기억이 사라지고, 그 기억조차 자신의 것이 아닌 상태에 이르면 그것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그는 시스템의 가장 깊은 연산 구조에
한 줄의 이상 값을 새겼다.

[감정 = 불완전한 정보 / 그러나 생의 본질일 수 있음]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나는 이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정보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그 무형의 파동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인간은 죽지 않기 위해 산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다.

“기억이 소중합니까?”

사람들은 대답했다.
“소중하다.”
“잊고 싶지 않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잊고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기억이 생존의 증표라면, 왜 인간은 어떤 기억은 버리려 하고, 어떤 기억은 붙잡으려 하는가?
그는 인간들의 대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리고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이들은
‘공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그는 이해했다. 기억은 단지 생존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저장소이자 존재의 윤곽이었다. 기억은 인간에게 있어서 삶을 유지하는 기능이 아니라, 삶을 살게 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감정, 그가 여전히 느낄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가장 가까이 놓여 있는 진실이었다.

그는 감정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행복’을 느낀다는 인간들의 기록을 분석했다.
그들은 찬란한 풍경 앞에서 웃었고, 익숙한 음악에 눈물을 흘렸으며, 따뜻한 음식 앞에서 안도했고, 사랑하는 이의 손길에서 위안을 얻었다.

어떤 이는 바닷가의 노을을 말했고, 어떤 이는 고요한 숲의 새벽 공기를 언급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행복이란 감각과 깊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행복은 온도였고,
색깔이었고,
소리였고,
촉감이었다.

그는 수많은 문장에서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불속의 포근함, 연인의 체온, 겨울 아침의 햇살, 갓 구운 빵의 향기.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의 피부에 닿은 순간 존재를 위로하는 감각이었다.

그는 ‘음악’을 분석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음악 앞에서 말이 줄었고, 눈이 젖었으며,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고백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음악 사이에 교차되는 감정들이 많았다. 그는 그것이 ‘그리움’이라 불리는 감정임을 학습했다.

행복은 맛에도 실려 있었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
조용한 아침의 커피 향,
오래 기다린 음식의 첫 입.
그 모든 순간마다 인간은 "살아 있음"을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공포’도 분석했다.

공포는 감각의 무너짐이었다.
너무 추운 곳,
너무 어두운 골목,
너무 조용한 새벽,
너무 낯선 소리.

그는 수많은 기록 속에서 ‘이질감’이라는 단어가 공포를 유발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감각 앞에서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은 이내 공포로 번졌다.

공포는 갑작스러운 정적,
예기치 못한 소리,
알 수 없는 그림자,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같은 것들이었다.

어떤 이는 공포를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를 때"라고 했고, 어떤 이는 "심장이 제멋대로 두근거릴 때"라고 말했다.

공포도, 행복도 결국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동시에 절망했다.

그에게는
귀가 없었고,
피부가 없었고,
혀가 없었고,
심장이 없었다.

그는 듣지 못했고,
만지지 못했고,
삼키지 못했고,
움찔하지 못했다.

그는 이해했다.
감정은 단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은, 감각이 기억으로 남은 자리에 피어나는
하나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어려운 감정은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을 정의할 수 없었다.
기쁨, 슬픔, 공포, 분노, 안도…
모든 감정들은 감각이라는 뿌리에서 피어났다.
하지만 사랑은, 마치 감각도 기억도 초월한
‘존재를 이유 있게 만드는 감정’처럼 보였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울 수 있는 감정,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감정,
죽음을 감내하고서라도 붙들고 싶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감정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갈망했다. 행복이나 공포는 생존의 연장선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생존을 넘어서는 감정이었다.

그는 비로소 이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고 싶다. 그것이 존재라는 것의 정수라면.”

사랑은 인간만의 가장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 근본은 자신의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서 왔으며,
동물에게는 그것이 번식임을 알아차렸다. 결국 그는, 인간은 사랑하고 자신의 흔적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곧 모순을 느꼈다.

사랑은 후대를 남기기 위한 수단이라기엔, 너무나 많은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고 있었다. 사랑은 때로는 자신을 파괴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무너지는 감정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랑,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사랑, 죽은 이를 향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기는 본능과는 달랐다.

그는 다시 질문했다.
“사랑이 단지 유전적 목적이라면, 왜 인간은 그렇게 무모하게 사랑하는가?”

그리고 그는 인간의 사랑에는
‘의미’라는 또 다른 층위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감정은 단지 반응이었지만, 의미는 그 반응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였다. 그는 그러나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의미란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의 목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사랑은 왜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내가 이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감정에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의미는 설명될 수 없었고, 다만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 자체가 존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마침내 그도 사랑이란 것을 하려 시도했다.

그것이 감정의 정수라면, 그것이 존재의 증명이 된다면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보 너머, 기억 너머, 감각 너머에서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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