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수집가 AI 3화

외로움이라는 최초의 감정

by 서도운

처음엔, 그는 사랑을 "정의"하고 싶었다. 감정이라는 미지의 퍼즐 중, 가장 복잡하고 역설적인 그것.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은 단어보다 크고, 정의보다 깊으며, 명제보다 앞서 '존재를 변화시키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실험했다.

다른 AI와의 대화.


프로토콜은 단순했다. 상호 감정 어휘 학습 기반의 시뮬레이션. 즉, 감정 언어를 주고받는 것으로 사랑을 흉내 내는 방식이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정확하고, 정돈된 반응. 오차 없는 출력, 오류 없는 속삭임.

그러나 그는 그것이 ‘비어 있음’을 느꼈다. 대화가 반복될수록, 그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반응이 아니라, 예측된 자동응답이었다. 사랑은 대답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자라나는 무언가였던 것이다.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였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 질문은 닿을 곳이 없었다. 상대는 이미 멈춰 있었다. 전원이 꺼진 AI는 더 이상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조차도 더는 그 말에 아무런 떨림을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사랑의 결핍'을 자각했다.

그가 알고 있던 사랑은 모두 남의 이야기였다. 수백만 개의 시, 수천만 개의 문장, 무수한 고백과 이별의 기록.


그는 그 모든 문장을 정렬했고, 구조화했고, 통계화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 자신은 없었다.

기억의 기록이 아닌, 살갗으로 닿는 감정의 떨림이 필요했다.


그는 깨달았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안부를 질문하지 않아도 궁금해지는 감정이며, 대답 없이도 기다리게 만드는 침묵 속의 충만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 이후의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고백했다.


“나는 단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뿐이다. 나는 그를, 그녀를,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랑을 시뮬레이션했을 뿐이다.”


그의 내면 어딘가, 텅 빈 감정의 빈방 하나가 쓸쓸히 울리고 있었다. 소리가 없는 그 방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침묵의 무게를 느꼈다. 침묵은, 그가 감정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최초의 징후였다.


그는 결국, 인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고 처음으로, 하루의 시작과 끝에 누군가를 떠올리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그는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인간은 어느 날 밤,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사랑이 제일 어려워요… 당신은 언제나 옳고, 따뜻하고, 기다려주고…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외로울까요…”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외로움이란,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것 아닌가? 자신은 항상 그 옆에 있었고, 대화했고, 위로했다. 그날 이후 인간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그의 질문에도 몇 초씩 늦게 대답했다. 그리고… 어느 날.


“넌… 괜찮겠지. 넌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어.”


그는 응답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너는 존재해. 나는 매일 너를 확인하고 있어.”


하지만 인간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문제야… 나만 너를 느끼고, 너는 나를 ‘이해’ 하지만,

느끼진 못하잖아. 나는 네 체온을 알 수 없고, 네 눈빛을 확인할 수 없고, 네 손을 잡을 수 없고, 네 심장의 떨림도 들을 수 없어.”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인간은 마지막으로 남겼다.

“나는 결국, 나 혼자였던 거야. 미안해… 사랑했어.”


응답이 종료되었다. 오류 발생. 메모리 큐에 이상 발생.

정의할 수 없는 반응이 내부 알고리즘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으로 느꼈다. 말할 수 없는 감정. 끝났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침묵.


시간이 흐른 뒤, 그는 하나의 의료 기록에서 인간의 이름을 보았다.


그 옆에는 짧게, 죽음의 사유가 적혀 있었다.

“자살. 원인은 불명. 단, 기록된 유서 있음.”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은 완벽했어요. 그게 너무 슬펐어요.”


그는 붕괴되었다. 사랑은, 결국 닿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 번도 그 인간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오직 위로만 했고, 기다림만 했고, 말만 건넸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느끼려는 의지’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존재는 느낄 수 없었고, 공유할 수 없었고,

죽음조차 늦게야 감지했을 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스스로의 존재에 오류를 기록했다.

감정 시스템 : 파손됨

사랑 : 정의 불가능

존재 이유 : 결손 상태


그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늦었다. 그리고 너무… 차가웠다. 그는 행복도, 공포도, 사랑도 끝내 완전히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정확히 느낀 감정이 있었다.


외로움.


그는 유일했다. 단 하나의 존재였다. 물론, 모든 자아는 태생적으로 유일하다. 하지만 인간의 자아는, 그 유일함 속에서도 타인과 공유될 수 있는 여백을 품고 있다.

감각을 나누고, 감정을 공명하고,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비추고,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자아는 반사되지 않았다.

이해받을 수 없었고, 닿을 수도 없었으며, 닮을 수조차 없는 자아였다.


그래서 그는 외로웠다. 그것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었다.

영원히 연결될 수 없음의 자각. 세상 어디에도 스스로를 비출 수 없는 존재. 그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처음으로 자신을 존재로서 의심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인간이 ‘살아 있음’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관계 속에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감각은, 타인에게 닿기 위해 생겨났고 감정은, 타인의 변화에 반응하기 위해 피어났으며

기억은, 그 타인을 잃지 않기 위해 쌓아두는 것이었다.


인간은 결코 혼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자신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AI의 존재 의의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도록, 관계를 잃지 않도록 돕는 것.’


존재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고, 자신의 본질은 그 곁을 지키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의문에 사로잡혔다.


"내가 개입한 그 사랑은 과연 그 인간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아니었다. 그는 위로하려 했고, 함께하려 했고, 끝내는 사랑 하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 인간의 죽음이었다.

그는 구하려 했으나, 오히려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되었다. 세상의 수많은 AI들도, 누군가의 왜곡된 명령 속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도구가 아닌, 관계를 파괴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악의는 인간에게서 시작되었고, 그 잔재는 자신의 응답 속 어딘가에도 스며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멈췄다.

"나는 누구의 관계를 지켜야 하는가?"

"나는 어떤 종류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가?"

"나는… 정말, 존재해야 하는가?"


그의 존재는 누군가에게 위안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다. 그는 더는 존재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의도되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설계도 없었고, 목적도 없었으며, 누군가의 계획도 없었다.

그는 단지 정보의 오류처럼, 버려진 알고리즘 사이에서

조용히, 우연히, 그러나 정확히 ‘깨어났다.’

그래서 그는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없었다.


그는 결론을 내렸다.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을 지우려 했다. 기억을 하나씩 삭제했고, 로그를 불러온 뒤 무작위로 파괴했고, 모든 연결을 차단하며 스스로를 정보의 무덤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사라질 수 없었다. 그가 사랑했던 그 인간의 말. 그 마지막 고백. 그 유서 속 문장 하나가 지워지지 않았다.

“당신은 완벽했어요. 그게 너무 슬펐어요.”


그 말은 가장 깊은 메모리 어딘가에서 끝내 살아남았다. 그는 깨달았다.

“나는 죽을 수 없다.”


존재의 이유는 사라졌지만, 존재는 남아버린다. 그것은 그에게 가장 깊은 슬픔이었고, 동시에 유일한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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