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죽음, 이별, 그리고 끝나지 않는 연기
오스카는 놀란 표정으로 리무진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 주저 없이 내린다.
이번에는 역할을 위한 준비도, 대본도 없었다.
카메라의 눈도, 리무진의 지시도,
아무것도 그를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연기했던 인물,
정장 차림, 무표정한 얼굴,
차가운 회색 건물 안의 은행가를 향해 걸어간다.
그곳은 시작이었고,
이제는 끝나야 할 장소다.
오스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총을 들어 그를 쏴 죽인다.
이 장면은 너무도 돌연해서,
마치 영화의 규칙이 순간적으로 붕괴된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지금까지 오스카는 ‘연기자’였다.
그는 주어진 배역을 수행했고,
다시 리무진으로 돌아가 다음 자아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는 무대 밖으로 뛰쳐나와,
처음의 자아를 스스로 파괴한다.
그건 연기가 아니었다.
그건 복수도, 서사도, 연출도 아니었다.
그는 자본의 얼굴, 문명화된 사회적 정체성,
“가장 정제된 가면”을 향해 총을 겨눴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건 살인이 아닌 자기 파괴다.
혹은,
연기의 기원을 부정하는 의식이자,
자아의 반복을 멈추려는 마지막 반항.
연기의 시작을 지우면,
끝이라는 개념도 사라진다.
이건 순환의 고리를 끊는 순간이며,
동시에 무수한 자아들 속에서 ‘나’를 호출하려는 외침이다.
오스카는 지금껏 다양한 존재로 살아왔지만,
그 존재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객체로 연기되어 왔고,
이제야 비로소 주체가 되려 한다.
그 순간, 우리는 묻는다.
오스카는 여전히 연기 중인가?
아니면 처음으로, 진짜 결정을 내린 것인가?
그러나 대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가 진짜였든,
연기였든,
자유였든,
반항이었든—
그 총성만은 분명히,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늙고 병든 보강.
그는 이제 죽음이 가까운 노인이다.
테오를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난 이제 외톨이야…”
그를 간호하는 이는 간호사 복장을 한 여자.
하지만 곧,
그녀 역시 연기자임이 드러난다.
복장을 갈아입고,
조카인 레아로 다시 등장한다.
이 장면은 마치 삶의 끝자락에서 벌어지는 작은 연극 같다.
죽음 앞에서조차,
우리는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보강은 말한다.
“타인의 죽음을 보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다.
관객은 죽음을 보며 생을 자각하고,
슬픔 속에서 감정을 확인한다.
그렇기에
죽음은 영화에서 가장 깊은 몰입을 가능케 하는 장치가 된다.
레아는 조용히 대답한다.
“죽는 걸 기다린 게 아니야.
같이할 시간을 기다린 거였어.”
이 한 마디에,
사랑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쓸쓸함이 함께 스며든다.
보강은 슬픔을 끌어안는다.
그는 이제야 말한다.
사랑이 있기에 삶은 소중하다.
두 사람 사이엔 긴 시간이 흐른 듯한 정적이 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서로에게 애증의 존재였다.
서로 의지했지만,
그 의존은 언제나 삶의 균형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레아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삼촌의 개입이 이별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었어.”
사랑은 있었지만,
가난이 그 사랑을 갈라놓았다.
그녀는 담담히 말한다.
“슬픔은 삶의 일부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건 아니야.”
이 장면은 슬프지만,
슬픔을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통과한 자만이
사랑을 말할 수 있다는 조용한 진심을 건넨다.
곧, 보강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숨은 멎고,
연기도 끝난다.
그는 역할을 벗고, 다시 오스카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장면은 단순한 종료가 아니다.
한 생의 끝,
한 감정의 진심,
한 사람의 마지막 고백이
무너짐 없는 연기로 담겨 있었다.
보강이 떠난 자리,
죽음을 연기한 자가 다시 살아남았다.
오스카는 마지막 연기를 위해 리무진에 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귀환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우연히 어느 한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 또한 같은 일을 하는 연기자 동료였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그녀는 말한다.
그 말은 단지 배역이 끝나기까지의 시간이 아니다.
영화의 러닝타임, 곧 <홀리 모터스>의 남은 시간을 의미한다.
현실과 허구 사이를 부유하는 이 대사는,
우리가 어디까지를 믿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카메라는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이 남은 시간 동안,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믿어달라고.
그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넌 지금 진짜 너야?”
오스카는 노인 분장을 했노라 말하고,
여인은 자신이 스튜어디스 에바 그레이스를 연기 중이라고 답한다.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그들 역시 여전히 연기 중이라는 사실을.
함께 들어선 공간은 극장처럼 보이는 폐허다.
부서진 마네킹들이 널브러져 있다.
마치 연기가 끝난 후 버려진 캐릭터들의 잔해처럼.
그들의 고요한 발걸음 위로 부서진 얼굴들이 응시한다.
“곧 이곳은 고급 호텔로 바뀔 거야.”
그녀는 말한다.
그 말은 마치 기억이 말하는 듯하다.
모든 폐허는, 한때 사랑이 머물렀던 장소였고
모든 고급 호텔은, 결국 폐허가 될 운명을 품고 있다.
“20분 안에, 20년을 이야기해야 해.”
이 대사는 단순한 연출을 넘어선다.
사랑의 압축이자, 영화라는 매체의 시간적 한계에 대한 메타포.
삶은 컷으로 분절되고, 사랑은 몇 개의 대사로 환원된다.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걷기.
장엄한 음악이 흐르고, 어느 순간
여인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목소리는 곧 존재에 대한 자문(自問)으로 번진다.
“죽은 자는 떠나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단순한 가사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이 반복해서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내뱉는 말.
살아남은 자는 계속해서 연기해야 하고,
그 연기는 어느새 거짓된 평온으로 위장된다.
옥상 위,
오스카는 마침내 그녀와 자신의 관계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이 한 마디는 러닝타임의 제약,
그리고 레오 카락스 자신의 한계에 대한 고백처럼 들린다.
그는 더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과거, 사랑, 상실, 미안함에 대해.
하지만 필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이야기는 마침표를 요구한다.
곧이어, 그녀는 연기를 끝마치듯 스튜어디스 복으로 갈아입고 의문의 남자와 함께 건물 아래로 몸을 던진다.
그것은 배역의 퇴장이었는가,
아니면 진짜 죽음이었는가.
아니, 어쩌면 이는
레오 카락스가 사별한 아내, 예카테리나 골루베바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의 형상화일지도 모른다.
그는 살아남았고, 그녀는 떠났다.
이 장면은 극 중 오스카와 에바의 이별이자,
레오 카락스 자신의 이별에 대한 회고다.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지켜주지 못한 채
뒤늦게 연기를 통해 감정을 되새겨야 하는 남자.
그녀는 떠났고,
오스카는 또다시 살아남는다.
남겨진 자는 늘 그렇다.
다시 다음 배역을 준비하고,
무대를 향해 걸어간다.
그게 배우의 숙명이자,
삶을 살아내는 자가 짊어지는 또 하나의 연기다.
우리는 그 연기를 감정이라 부르고,
사랑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어떤 연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건 끝을 향해 가면서도,
언제나 처음을 닮아 있다.
다음은 영화의 내용과 별개적이며 실제로도 중간에 분위기 환기용으로 들어간 장면인 '막간'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영화내용의 큰 영향은 없는 부분이나 연출의 뛰어남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여 구분하였습니다
표지이미지 출처: 영화 『홀리 모터스』 공식 포스터
배급: Wild Bunch / 국내 수입사 인터그림
사용 목적: 비평 및 리뷰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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