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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운의 시네마틱 레버리 [홀리모터스(5.5)]

5.5화 막간

by 서도운 Ma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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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막간


아버지를 연기하고 테오를 죽인 알렉스를 연기하기 전


실제 러닝타임의 정중앙.


영화는 문득, 서사를 멈춘다.

그리고 길고 기묘한 연주 장면을 펼쳐낸다.


오스카는 아코디언을 어깨에 멘 채 천천히 걷는다.

그 뒤로는 어두컴컴한 회랑, 오래된 성당의 복도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장엄한 음색이 울려 퍼지지만, 공기엔 눅눅한 긴장감이 감돈다.

이상하리만치 성스러우면서도 음울하다.


그 순간—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무리.

연주가 시작되고, 분위기는 급변한다.


경쾌한 리듬, 반복되는 베이스라인.

관악기와 타악기의 조화가 행진을 끌어올린다.

그들의 발걸음은 점점 더 화면을 향해 나아간다.

진취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우리는 그 에너지에 휩쓸린다.


반복적으로 상승하는 음.

플래시몹처럼 터져 나오는 음악.

그러나 그 모든 활기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묻어 있다.


너무 들떠 있다.

너무 활기차다.

너무 경쾌하다.


그리고 바로 그 과잉된 리듬이,

엄숙한 배경과 충돌하며

특유의 신비로운 감정을 자아낸다.


마치 죽음의 공기 위에

삶의 기운을 억지로 뿌려 넣은 듯한 기묘함.

기쁨과 허무, 생기와 사그라짐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던 중 음악이 갑자기 멈춘다.

모두가 멈춰 서고, 침묵이 흐른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터지는 함성과 함께

가장 격렬한 클라이맥스가 도래한다.


막혔던 리듬의 폭발.

한 편의 짧은 악장처럼,

삶과 죽음, 긴장과 이완이 뒤엉켜 터진다.


이 장면은 줄거리와 무관하다.

설명도 없고, 대사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장면보다도 명확하게,

영화의 심장박동을 들려준다.


삶과 죽음 사이,

배역과 배역 사이,

단 한 번의 숨 고르기.


레오 카락스는 이 장면을 통해

연출자이자 음악가로서의 감각을

완벽히 증명해 낸다.


우리는 이 장면 앞에서 묻는다.

이들이 걷고 있는 길은

배역을 향한 행진인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의식인가.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지금 걷고 있는 우리 자신의 삶 또한

하나의 행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 리듬에 맞춰 걷는다.

살기 위해, 잊기 위해,

그리고 다시, 연기하기 위해.



다음 화,

우리는 질문하게 될 것입니다.

“배우 없는 세상에서, 연극은 계속될 수 있을까?”



표지이미지 출처: 영화 『홀리 모터스』 공식 포스터

배급: Wild Bunch / 국내 수입사 인터그림

사용 목적: 비평 및 리뷰 목적

본 이미지는 저작권자의 요청 시 즉시 삭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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