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연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오스카는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카메라는 묻는다.
그가 향하는 그곳은 정말 ‘집’ 일 수 있는가?
그는 리무진에서 내리고,
낡은 옷을 벗고 다시 분장을 한다.
마치 오늘의 연기가 끝나기도 전에
내일의 역할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그의 귀가는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의식이다.
도착한 장소는 똑같이 생긴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동네.
균일한 외관, 무표정한 조경.
그리고 그 안에 기다리는 가족.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는 침팬지 가족의 아버지 역할을 맡는다.
카메라는 그 광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지켜볼 뿐이다.
그의 진짜 ‘집’이 이토록 이질적이며,
그의 가족조차 연기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오스카가 집으로 들어간 뒤,
우리는 다시 바깥의 세계를 바라본다.
리무진들은 하나둘 줄지어 ‘홀리 모터스’ 차고로 돌아온다.
오늘 하루 수많은 삶을 실어 나른 이 자동차들,
그들만의 밤이 도래한다.
그리고 운전사 셀린.
그녀는 리무진에서 내리며
가면을 조용히 꺼내 얼굴을 가린다.
그 행위는 단순한 연극이 아니라,
정체의 익명화,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들의 룰처럼 보인다.
이곳에선 배우도, 운전사도, 관객도
진짜 얼굴로 퇴장할 수 없다.
그녀는 가면을 쓴 채,
조용히 문을 닫고, 퇴장한다.
그 뒷모습은 차분하지만,
왠지 모르게 슬프다.
이 장면은,
각자가 하루 동안 수행한 역할을 숨긴 채
서로를 모른 척하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배우들의 세계를 암시한다.
무대가 아닌 현실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진짜 얼굴을 모른다.
가면을 쓰고 퇴장하는 건,
타인에게서 자신을 지우기 위한 마지막 연기다.
그리고…
<홀리 모터스>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차고 안, 어둠 속 리무진들 사이.
기계들은 서로 말을 건넨다.
우스꽝스럽지만 묘하게 진지한 대화.
“우리는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우리를 위한 길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야. 다음 상영을 위한 휴식일뿐이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가 줄곧 관통해 온 존재와 매체의 질문을 기묘하게 되풀이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인간에서 연기로,
삶에서 역할로 이어지는 전이(轉移).
우리는 웃을 수도 있고, 숙연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리무진들의 독백이야말로
<홀리 모터스>라는 세계가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진짜 배우들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이 영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다음 날,
다음 감정,
다음 역할을 준비해야 한다.
연기는 끝나지 않는다.
삶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마지막 화(7화)에서는
영화 속 가장 메타적인 장면—
오스카와 ‘의문의 남자’의 대화를 중심으로,
레오 카락스가 남긴 질문을 되짚어봅니다.
표지이미지 출처: 영화 『홀리 모터스』 공식 포스터
배급: Wild Bunch / 국내 수입사 인터그림
사용 목적: 비평 및 리뷰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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