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작, 영사실의 기억
현악기의 부드러운 선율이 공간을 채우며, 화면은 흐릿하고 탁한 느낌을 준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는 듯한 그 장면 속에서, 한 할머니와 그의 딸은 고요히 앉아 있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 한다.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그 소식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아들에게 전해져야만 한다.
바로, 알프레도의 사망 소식.
그 소식이 무겁게 다가오지만, 그들은 그것을 단순히 전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알프레도의 죽음은 그들 간의 끊어진 기억을 다시 되살리기 위한 작은 촉매가 될 것이다.
아들은 그 소식을 들은 후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다정한 부부와 함께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알프레도의 죽음이 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단순한 상실의 아픔을 넘어, 고향에서 함께 보낸 그 시간들, 알프레도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복잡한 감정을 경험한다. 아마도 알프레도는 그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지만, 그가 떠난 후에는 그 어떤 말로도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남기고 갔다.
이런 복잡한 감정 속에서, 이야기의 초점은 어린 토토로 옮겨간다.
그 시절, 그는 성당에 다니는 전형적인 개구쟁이였다. 성당에서 뛰어놀며, 그날의 일상에 대한 호기심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알프레도였다.
알프레도는 그저 극장의 영사기를 담당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린 토토에게는 그 이상의 존재였다. 알프레도의 그 손끝에서 필름이 교체되고, 화면 속의 세계가 살아나는 그 모습은 어린 토토에게 마치 마법처럼 다가왔다. 알프레도는 때때로 짓궂게 그를 놀리기도 했지만, 그 속에는 늘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어린 토토는 잘 알았다. 알프레도는 그냥 영사기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돌봐주는 어른이었다.
하루는, 편집을 맡고 있는 신부님이 영화를 편집하는 모습을 어린 토토는 즐겁게 지켜본다. 신부님은 영화에서 키스 장면을 검열하며, 종을 치는 소리에 맞춰 그 장면을 잘라낸다. 그 모습은 당시 사회의 보수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어린 토토는 그 장면을 보며 신기하게 여긴다. 그때부터 그는 검열된 키스 장면에 대해 호기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알프레도의 영사실에 놀러 가 검열된 필름을 달라고 요청한다. 알프레도는 그 요청을 거절하며 그를 내쫓는다. 그러나 그 거절 속에서도 알프레도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알프레도는 어린 토토를 내보내며 필름을 줄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그가 어린 토토를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그들의 관계는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정겨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속에 담긴 애정은 단순한 위계적인 관계를 넘어서 정서적 유대를 만들어간다. 어린 토토는 알프레도의 존재를, 그가 영사기를 다루는 손끝에서부터 그의 따뜻한 마음까지, 점차적으로 배워가며 성장한다.
어린 토토는 버려진 필름조각들을 모은다.
그 조각들은 마치 고요히 흐르는 시간이 멈춘 듯, 그에게는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가족사진과 함께 잘 보관해 두며, 그 추억들은 그의 사랑이자 마음속 깊은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영사실에서 흘러나온 필름 속 이야기들이다.
그 필름들이 없었다면, 그의 세계는 그만큼 어두운 곳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 전쟁이 한창이었고,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리운 아버지를 떠올리며, 토토는 그가 보내주는 편지 한 통 한 통을 소중히 여겼다. 그 소식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떠오르는 고향의 기억들이 있었다.
종소리는 이 시대를 상징하는 소리였다. 시간과 통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그 흐름 속에서 자신들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 시절, 강압적인 교육방식이 팽배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규율과 질서를 강요하며, 그 속에서 자유와 상상력은 여지없이 눌려 있었다. 토토도 그 흐름 속에서 자라면서, 조금씩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알프레도가 필름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토토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알프레도는 언제나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았고, 말썽을 부려도 그저 미소로 넘겨주었다.
알프레도에게는 어린 토토의 작은 실수도, 그저 지나가는 따스한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늘 액션 서부 영화를 즐겁게 빠져들어 보았다. 그들은 화면 속의 총격전과 말 타는 장면에 가슴을 뛰게 했지만, 어른들은 그런 영화에 무관심해 보였다. 그들은 딱히 영화를 즐기지도, 눈빛에 감정을 담지 않기도 했다. 그저 지나가는 일상처럼 보였다. 전쟁에 지친 당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영화를 더 많이 느끼게 했고, 그것이 영화 속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이유였다.
중간에 상영된 선전 광고에서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짙게 드러난다. 그 광고는 강압적이고 형식적인 언어로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필름 속의 키스 장면이 검열된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아쉬워하고 또 속으로 한숨을 쉰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회적 규범에 의해 제한당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그 장면을 통해 순수한 감정을 느끼고자 했다.
이후 코믹영화가 상영되며, 극장은 금세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모두들 잠시라도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영화 속 코믹한 장면들에 빠져들며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그 영화는 단순한 오락의 한 장르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웃고, 감정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날, 심부름 돈으로 영화를 본 사실이 엄마에게 들켜 엄하게 혼이 난다. 토토는 무척 당황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그저 영화 한 편이 좋았을 뿐인데, 그 순간의 기쁨은 곧 어른들의 눈에 비친 잘못된 행동이 되었다.
하지만 알프레도는 거짓말로 토토를 감싸주었다. 토토만큼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알프레도는 토토의 영화를 바라보는 눈빛을 이해하며 아이를 감싸준다. 그 순간, 둘은 절친적인 모습을 보이며, 영사실 속에서 마치 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가는 듯한 정겨운 모습을 보였다.
알프레도와 토토는 단순히 영사실에서 만나는 두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중요한 추억의 조각을 주고받으며, 그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존재가 된다. 토토는 점차 알프레도를 존경하며,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필름처럼 자신의 삶도 영화처럼 아름다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게 된다.
"본 표지에 사용된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 등록된 공식 배급사 포스터이며,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즉시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