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秋 / 夕
벼가 익나요, 메뚜기가 익나요
민족의 대명절 추석(秋夕)이다.
秋夕을 그대로 뜻풀이하면 가을 저녁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가을에서도 달빛이 아름다운 저녁으로, 가장 좋은 날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가을 중의 가을인 추석은 그 좋은 날씨도 그렇지만 한창 곡식 추수에 여념이 없을 때이기도 하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가. 추석이 우리 민족 최고의 명절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秋'(가을 추)는 '禾'(벼 화)와 '火'(불 화)로 만들어진 한자인데, 벼가 벌겋게 익어가는 들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야말로 풍요의 계절이다. 그런데 갑골문을 보면, 벼가 아니라 메뚜기가 불에 구워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왜 하필 메뚜기일까. 고대부터 메뚜기는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까닭에 가장 두려운 곤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곡식이 풍요롭게 익어가는 가을이기에, 메뚜기로 인한 피해가 가장 극심한 시기이기도 하다.
秋라는 한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벼가 풍요롭게 익어가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엄청난 고통을 주던 메뚜기로 볼 수도 있다는게 뭔가 묘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덮치고 꽤 시간이 흐른 오늘 다시 추석을 맞았다. 금융, IT, 물류처럼 풍요를 노래하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대면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는 식당, 노래방 같은 곳은 메뚜기떼처럼 덮친 코로나로 인해 크게 신음하고 있다.
한편 온 식구가 오랜만에 함께 모이는 명절 추석이지만 가사 노동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때가 추석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명절 직후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 하고, 집에서 '전 부치기' 단기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까지 올라올까. 이래저래 추석이 누군가에게는 '벼가 익는 날'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메뚜기가 덮치는 날'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月'(달 월)에서 유래한 한자 '夕'(저녁 석)은 달빛이 구름에 가린 모습을 묘사했다는 해석도 있다. 구름 한점을 머금은 보름달은 무척 어여쁘다. 그런데 요즘 시국에 구름에 가린 달을 바라보면, 어째 달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1년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추석 명절이건만 마냥 그럴 수만 없는 요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