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욱 Jul 07. 2022

회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금에게 '너'라고 호칭하며 야자타임을 시전했던 정인지는 그 외에도 여러 차례 세조 앞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실수는 늘 술자리에서 나왔다. (참고글 : https://brunch.co.kr/@sdw8352/328) 사실 세조가 베푼 술자리에서 실수를 저지르거나 곤란한 상황에 빠졌던 사람은 정인지뿐만이 아니었다.


세조가 가장 신임했던 신하 중 한 명이었던 신숙주는 술자리에서 팔을 비틀어보라는 세조의 장난에 정말로 팔을 비틀었다가, 자칫 세조의 큰 노여움을 살 뻔했다. 한창 술자리를 갖던 중 이계전이란 신하가 세조에게 "오늘 성상께서 어온(술)이 과하신 듯하오니 청컨대 대내(大內)로 돌아가소서"라고 말했다가 “내 몸가짐은 내 마음대로 할 것인데, 네가 어찌 나를 가르치려고 하느냐?”라는 호통을 들으며 곤경에 처한 적 있었다. 심지어 술 마시다가 사형을 당한 공신도 있었다. 양정은 술자리에서 "전하께서 왕위에 오른 지가 이미 오래됐으므로, 오로지 한가롭게 쉬심이 마땅할 것입니다."라는 말로 세조에게 대놓고 임금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했다가 참형을 당한 것이다. 이렇듯 세조의 술자리에서는 유독 사건사고가 무척 많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세조가 유독 술자리를 많이 가졌던 탓이다.


세조실록에서 '술자리'라고 검색을 하면 무려 467건의 기록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전체 기록이 974건임을 감안하면 거의 절반이 세조 때에 집중된 것이다. 조선왕조 518년 동안 세조 재위 기간이 약 13년에 불과함을 생각하면 세조가 얼마나 많은 술자리를 가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이유는 그가 술을 무척 좋아했다는 점도 당연히 한몫했지만, 쿠데타를 통해 칼로 집권한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고 신하들과 소탈하게 지내는 면을 최대한 부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공신 세력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기분을 다독여 주려한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나름 조직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세조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여러 부작용도 속출했다. 세조는 신하로부터 "너!"라는 말을 들은 조선시대 전무후무한 군주였으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술자리 실수 때문에 사형을 당하는 신하까지 나왔고, 반대로 '아무리 취해도 말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위관리에 파격 임명된 신하도 있었다. 이런 스펙터클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 술자리를, 과연 신하들도 마냥 즐길 수 있었을까? 실수하지 않기 위해 바짝 긴장하면서 가지는 술자리라면, 맛있는 안주도 금방 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직장 상사가 회식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세조처럼 술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팀원들 간의 친목과 화합도 커지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회식을 많이 할수록 팀원들의 친목도 그만큼 비례해서 올라갈까? 아니다. 그 자리를 불편하게 여기는 팀원들이 많다면, 오히려 효과는 반감되고 역효과까지 날 수 있다. 그들이 회식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회식을 한다고 해서 원래 없던 친밀감이 갑자기 생겨날 리 없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식하는 이유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회식은 팀원들 간에 없던 친밀감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친밀해져 있는' 동료들이 함께 일하며 고생한 노고에 대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친밀해지려는 노력은 회식 자리에서가 아니라, 일하는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일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과정을 통해서, 힘든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동료라는 '유대감'이 생겨나면, 자연스럽게 같이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누고 싶어 진다. 평소 사무실에서 형성된 친밀감이, 서로 즐겁게 소통하는 진정한 의미의 회식 자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간혹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할 때 서로 불편한 사람들이 같이 술 마신다고 해서 갑자기 친해질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말자. 정말 팀원들과 친밀해지고 싶다면 술자리에 가서 힘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힘내라고 말해주자. 힘내라는 말은, 잘하고 있다는 격려는, 꼭 술을 먹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닐 테니까.


#오늘의JOB생각 #직장인 #직장생활 #술자리 #회식 #술조심 #리더십 #동료 #친밀감

매거진의 이전글 "왜?"라는 질문에 직면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