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순정(純情)

아빠가 아들에게 매일 하나씩 알려주고 싶은 365가지 단어

by 신동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한 개그우먼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어. 항상 유쾌하고 밝은 웃음을 선물해 주던 그녀였기에, 이렇게 훌쩍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정말 믿겨지지 않는구나.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1년전 그녀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 행사 담당자가 선물한 노란 병아리 캐릭터 인형을 받아들고 무척 기뻐하던 그녀의 선한 웃음과 유쾌한 목소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그날 무척 즐거웠던 강의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 'H.O.T.'에 대해 얘기할 때는 더욱 신나서 말하던 모습이 떠올라.


고등학교 때 무척 공부를 잘 했다고 해. 그런데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H.O.T.'때문이었다고 하더라. 자신이 H.O.T.의 팬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이 아시는데 공부를 못하면 가수 쫓아다니느라 그렇다고 잔소리를 듣는건 정말 싫었다는 거야. 혹시라도 H.O.T.때문에 자기가 공부를 못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들이 싫은 소리를 듣게 될까봐, 오빠들을 욕보일까봐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해. 정말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더라.


시간이 흘러 그녀는 이미 웬만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가 아는 유명한 연예인이 되었어. 그동안 최고 인기그룹이었던 H.O.T.는 해체되었었지. 그런데 그렇게 사라졌던 H.O.T.가 17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무한도전이란 TV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등장한거야. H.O.T. 공연이 있던 날, 콘서트 티켓 응모에서 떨어진 그녀는 집에서 전을 부치고 있었다는구나. TV를 보다가 이런 역사적인 날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서 바로 공연장소로 달려갔대. 아쉽게도 입장하지 못한 수많은 팬들이 추운 겨울날임에도 건물 밖에서 열광적으로 H.O.T. 오빠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지. 그녀도 그 팬들 한가운데로 들어갔어. 자신도 똑같이 H.O.T. 의 팬이었기에. 그들과 나란히 서서 열심히 H.O.T. 의 이름을 외치고 함께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 앞에 서서 연설도 했다고.


'아무리 그래도 나도 연예인인데 어떻게 창피하게...'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 같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지더라. 내가 좋아한다는데,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슨 상관이냐는듯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모습이 참 멋지게 느껴지더라.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 그녀는 '순정'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어린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조건이 수반되는 사랑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맺어진 애정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니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아직 '죽음'이란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할 나이인 너만큼이나, 아빠도 왜 그녀가 그렇게 훌쩍 떠나야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 순수했던 나머지 자신의 아픈 감정 앞에서도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었던 걸까. 여전히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순정'이란 단어와 함께 그녀를 내 기억속에 남기는 것으로 애도를 표해본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라 더 좋았던 사람, 그녀를 이 글과 함께 기억 한 켠에 남겨본다.


오늘의 단어

순정(純) :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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